제자가 “어렵고 힘든 기하학을 공부해서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을 때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저 친구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줘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녀석이니까”라고 하면서 내쫓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처음에 이집트 문명에서 ‘땅을 측량(geometry)’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된 기하학이 그리스로 전해지면서 고도의 논리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변모했으며 유클리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그의 저서 ‘원론’으로 기하학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연역적이고 논리적 체계는 중세 이후 유럽 학문의 전통이 되었으며 세상을 바꾸어놓은 근대과학으로 이어졌다.
아인슈타인도 서양에서 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유클리드 기하학이란 논리적 체계의 발명과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던 체계적인 실험에 의한 정량적 방법에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자본주의의 태동과 같은 사회적 요인도 있겠지만 쓸모없다던 그리스 수학이 과학 탄생에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근대과학의 탄생 이전에는 중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화약 종이 인쇄술 나침반 철 쟁기 등 생활 세계를 바꿔놓은 많은 위대한 발명을 이루어냈으며 이것들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과학혁명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항해에서 이미 15세기에 100m가 넘는 배를 제조해 수백 척이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수학에서도 중국과 인도, 그리고 아랍 문명은 실용성이 유럽보다 뛰어났다. 0의 발명과 더불어 지금 사용하는 인도-아라비아 숫자의 편리성은 유럽의 로마 숫자를 압도했으며, 역시 응용성이 큰 방정식 분야도 매우 발달했다.
그러나 데카르트 갈릴레이 뉴턴 등 근대과학 창조자들은 동양이 아닌 유럽에서 나왔다. 물론 과학을 탄생시킨 서양이 우월하고 그렇지 못한 동양이 열등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서양의 과학은 서양인들만의 능력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며, 동양에도 실용 학문뿐만이 아닌 매우 심오한 사고 체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단지 과학 탄생에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논리적 학문 체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내용뿐만 아니라 그 논리적 서술 형식도 여러 사람의 저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저서로 꼽히는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원론’의 방식으로 쓰였다. 결국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어렵기만 하고 쓸모 없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근대과학을 낳은 매우 쓸모 있는 학문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의 과학이 기술, 자본주의와 만나며 과도하게 세계를 망가뜨렸고 이제는 인류 멸종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시대에 이르게 됐다. 진정 깊은 성찰과 함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근본적인 사고의 변화를 의미한다. 두 번째 ‘축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이를 위해 첫 번째 ‘축의 시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본질적인 물음을 묻고 그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실용적 지식을 요구하며 어렵고 쓸모가 그리 없어 보이는 공부는 기피하는 시대인 것 같다. 문자로 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유튜브와 같은 시청각 자료도 십여 분 이하의 짧은 영상이라야 조회 수가 올라가며 그것도 모자라 1분 미만의 ‘쇼츠’를 제작하는 세상이 됐다. ‘5분 만에 이해하는 XXXX’ 같은 황당한 영상 제목도 즐비하다. 또한 마음은 있어도 두껍고 어려운 책을 붙들고 오랜 시간 씨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넓고 얕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이런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근대과학의 산파 역할을 했듯이 붕괴되어 가는 현대문명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낳을 수 있는 ‘쓸모 없어 보이지만 진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