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차재원의 정치평설] 김정은보다 못한 미국 대선 대비

차재원 부산가톨릭대교수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교수
  •  |   입력 : 2024-10-03 19:23:12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달 2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기업연구소(AEI)가 개최한 대담에 내외의 시선이 집중됐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참석 때문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국무부 장관 제1순위로 꼽혀온 인물. ‘트럼프 2기’ 대외안보 정책의 길라잡이인 셈이다. 이날 주제 역시 ‘미국 안보에 대한 중국의 포괄적 위협’. 실제 그는 구체적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정작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한·미·일 공동협력을 강조하며 일본 방위비 증가 노력을 소개한 뒤 한국 국방비 증액을 불쑥 제기한 것. “한국도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에서 미국처럼 3~3.5%로 올려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는 약 2조 달러(약 2600조 원). 2.5%라면 65조 원. 실제 올해 국방예산은 59조 4000억 원이다. 그의 말처럼 GDP 1%, 26조 원을 더 올리면 91조 원이다. 한꺼번에 예산을 44% 증액해야 한다. 올해 경기침체로 세수가 이미 29조6000억 원이나 ‘펑크’난 상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봐줄 것 같진 않다. 전체 국방비는 몰라도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의 증액만큼은 관철하려 들 것이다. 과거 재임 시절 연 1조389억 원(2019년)이던 분담금을 한꺼번에 5배가량 올려 5조8000억 원을 요구한 바 있다. 아마도 물가 인상과 재집권 자신감을 바탕으로 “묻고 더블로 가”라고까지 할 수도 있다.

오브라이언은 이날 북한도 콕 집어 언급했다. “북한과 이란은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원심분리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노골적 핵 위협을 다분히 고려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달 13일 핵폭탄용 고농축우라늄(HEU) 추출 원심분리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그동안 극비였던 시설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찰하는 사진을 통해서였다. 트럼프 재집권을 겨냥한 대미 협상용이라는 게 지배적 해석. 김정은으로선 일단 미국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셈이다. “재집권하면 나는 그와 잘 지낼 것이다.” 이미 트럼프가 이렇게 공언한 이상, 두 사람의 핵 담판은 다시 현실화할 수 있다. 문제는 비핵화가 아니라 기존 핵무기를 인정한 상태에서의 ‘현상유지(status quo)’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우린 영원히 북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오브라이언의 발언을 자세히 소개한 이유는 단 하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역대 미국 대통령과 촘촘히 얽혀 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 독립을 제일 먼저 천명한 1943년 카이로선언. 당시 중국 장제스 총통보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게 요즘 연구 결과다. 그의 뒤를 이은 트루먼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물론 유엔군 파병을 주도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제일 먼저 한국으로 날아와 휴전협정을 재촉했다. 이승만의 반발 무마를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안했다.

케네디는 5.16 군사정권을 사실상 인정했다. 존슨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이끌어 냈다. 당사자 스스로 아시아 방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 남한 주둔 미7사단 철수와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로 이어지면서 박정희를 ‘멘붕’에 빠뜨렸다. ‘인권 외교’를 외치며 주한미군 철수를 공언한 카터는 번번이 유신정권과 충돌했다. 10.26 사태가 일어나자 미국 배후 음모론이 불거졌다. 레이건의 등장은 광주학살로 집권한 전두환에겐 ‘복음’이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레이건의 반공과 보수주의에 편승해 미국 맹방을 자처했다. 냉전을 해체한 부시(아버지)는 주한미군 핵무기를 철수시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족쇄를 풀어줬다.

클린턴은 북한의 핵 개발에 대북 폭격까지 검토했다. 그러나 자신이 보낸 대북 특사 카터와 김일성의 담판으로 돌파구가 열려 북한과 ‘제네바 합의’에 이어 수교 직전까지 갔다. 아들 부시는 “악의 축”으로 명명한 북한의 HEU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급기야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오바마는 북핵 위협을 빌미로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압박했고, 박근혜 정부는 한일 위안부합의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모두 3차례나 김정은과 직접 핵 담판에 나섰다. 상당한 기대를 자아냈으나 막판 고비를 넘지 못했다. 바이든은 고도화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워싱턴 선언’을 한국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 핵 자산에 한반도 상시 임무가 떨어졌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카터가 레이건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면 전두환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아들 부시가 아닌 클린턴의 대북 협력 기조를 이은 민주당 고어가 당선됐다면 북미관계 정상화로 북핵 개발은 멈췄을까. 부질없는 상상이라고만 치부할 순 없다. 그만큼 미국 대선 결과는 우리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얘기다. 이제 한 달 남은 미국 대선. 그저 ‘한미동맹’을 되뇌며 넋 놓고 구경만 해선 절대 안 된다. 해리스든, 트럼프든 모든 경우의 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부도, 국회도 너무 조용하다. 정쟁 공방만 요란하다. 김정은이 배시시 웃을 듯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철도(부산진역~부산역) 위 ‘축구장 9개 크기’ 데크 덮어…공원·상가 등 조성(종합)
  2. 2‘1985년생’ 부산의 첫 전동차, 전시·체험관으로 변신합니다
  3. 3헬멧 벗겨질 정도로 달린 이정후, 시즌 첫 멀티히트
  4. 4먹고살려고 꿈 접은 ‘천재 문학청년’…62년만에 낸 첫 소설집
  5. 5[진료실에서] 망치로 맞은 듯 심한 두통…청년도 뇌동맥류 정밀검사 필요
  6. 6골든블루 “매각설 사실 아니다”
  7. 7장제원 전 의원, 어젯밤 숨진 채 발견… 경찰 “타살 혐의점 없어”
  8. 8부산 줄지 않는 ‘악성 미분양’…세제 완화 등 특단책 절실(종합)
  9. 9장제원 성폭력 혐의 고소한 비서, 동영상 증거 제출(종합)
  10. 10김석준 “교육정상화 적임” 정승윤 “좌파 맡아선 안돼” 최윤홍 “교육정책 전문가”
  1. 1선거법 무죄 이재명, 지지율 50% 육박(종합)
  2. 2탄핵 정국서 첫 광역단위 선거…‘尹마케팅’ 효과 여부 이목집중
  3. 3부산 여야 “표로 심판” 노골적 보혁대결 강조
  4. 4정청래 "4일 오전 11시 尹 탄핵심판 헌재 선고"(종합)
  5. 5김문수 “사장·회장 아무것도 모르는데…중대재해법 너무 처벌 위주”
  6. 6野 ‘재판관 임기연장법’ 법사위 강행 처리…與 “韓 탄핵하면 2명 후임 지명 당정 협의”(종합)
  7. 7野, 한덕수·최상목 쌍탄핵 카드로 마은혁 임명 압박…與 “조속 尹선고를”(종합)
  8. 8'尹 탄핵선고일 지정' 외신도 긴급타전
  9. 9대통령실, 尹탄핵심판 선고기일 지정에 "차분하게 결정 기다릴 것"
  10. 10민주, 尹선고기일 지정에 "다행… 만장일치 파면 확신"
  1. 1철도(부산진역~부산역) 위 ‘축구장 9개 크기’ 데크 덮어…공원·상가 등 조성(종합)
  2. 2골든블루 “매각설 사실 아니다”
  3. 3부산 줄지 않는 ‘악성 미분양’…세제 완화 등 특단책 절실(종합)
  4. 4연 1억 쇼핑은 기본…백화점, VIP 모시기
  5. 5공매도 재개 첫날 2500선 무너진 코스피…양대 지수 3% 급락(종합)
  6. 6정부, 가덕신공항 연말 착공 재천명
  7. 7하역장비 자동화 위주 진행…데이터 종합 플랫폼 시급
  8. 8中·日 환적화물 유치…BPA 관세파고 돌파
  9. 9“30년 간 부산 대형마트 선도…상권 동반성장 모델”
  10. 10내수 부진 장기화에 ‘덜 먹고 덜 입고 덜 쓴다’… 작은 소비 위축
  1. 1‘1985년생’ 부산의 첫 전동차, 전시·체험관으로 변신합니다
  2. 2장제원 전 의원, 어젯밤 숨진 채 발견… 경찰 “타살 혐의점 없어”
  3. 3장제원 성폭력 혐의 고소한 비서, 동영상 증거 제출(종합)
  4. 4김석준 “교육정상화 적임” 정승윤 “좌파 맡아선 안돼” 최윤홍 “교육정책 전문가”
  5. 5부산대·부산교대 찾은 李 부총리 “지역대 글로벌혁신 적극 지원”
  6. 6[속보] 헌법재판소 인근 3호선 안국역, 정오부터 일부 출구 폐쇄
  7. 7尹대통령 파면 또는 직무복귀 여부 4일 결정… 헌재, 생중계 허용
  8. 8중처법 위헌 땐 후폭풍…재심 속출 ‘제2의 윤창호법’ 될라
  9. 9부산 청년 유출 막자더니…市 공공기관 고졸채용 ‘찔끔’
  10. 10의대생 돌아온다지만…정부 “수업 들어야 복귀”
  1. 1헬멧 벗겨질 정도로 달린 이정후, 시즌 첫 멀티히트
  2. 2손흥민·지소연, 축구협회 올해의 선수…통산 최다 8번째 수상
  3. 3물먹은 솜방망이…‘봄데’도 옛말
  4. 4짜릿한 역전극…김효주 통산 7승
  5. 5‘누나 그늘’ 벗어난 교포 이민우
  6. 6팬 응원에 11회 극적 동점…롯데 첫 위닝시리즈는 불발
  7. 7후반 40분 페널티킥 동점골 허용…아이파크 3연승 눈앞에서 놓쳤다
  8. 8시동 건 이정후, 첫 안타·타점·도루 신고
  9. 9프로농구 KCC, 홈 8연패 수모
  10. 10피겨 차준환, 세계선수권 7위
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충성파로 내각 채우고 입법부까지 장악…트럼프 폭주 예고
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美공장 지어 무역장벽 우회…‘미국통’ 등용 네트워킹 강화도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市 노동안전보건센터, 조속한 설립 필요하다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개발의 시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
우리에게 절실한 성장 마인드셋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현대과학이 만든 에너지 화수분
제로 인공지능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산시교육감 재선거 사전투표소에서
시민은 ‘청년이 돌아오는 부산’을 원한다
기고 [전체보기]
에어부산 분리매각만이 합리적 해법인가?
트럼프 2기, 부산을 조선산업 지식 거점으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기관장 잔치’된 체전 폐회식…선수가 주역인 축제 만들자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부산은 왜 망해가고 있을까
이형(고종), 이승만, 박정희, 윤석열 - 그들의 계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계와 통하는 힙한 판소리
조선시대 조상들의 고독 대처법
김창욱의 스포츠 탐색 [전체보기]
골프 vs 파크골프, 당신의 선택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의 시급성과 중요성
명함을 자르며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
도청도설 [전체보기]
미국 ‘국채’ 투자
화마가 휩쓴 고운사
메디칼럼 [전체보기]
산재보험, 신청을 늦게 하는 이유
디지털 헬스케어와 미래의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금정산성막걸리와 겨울 안주
사하구 노포 맛집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 키우기 제5원칙, 사회적 소통
뇌력 키우기 4원칙 ‘잘먹기’
사설 [전체보기]
‘안전·품질’ 재확인 가덕도신공항 확장성도 고려를
5년 만에 최대폭 하락 부산 소비…침체 극복 대안은
세상읽기 [전체보기]
건설 현장의 위험, 호흡기 질환과 직업성 암
소비가 멈추었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양질의 지속 가능한 건강보장을 위한 개혁 방안
인구 위기 본질과 노인 연령의 합리적 조정 방안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무주공해(無主空海)
트럼프 2.0 그리고 대한민국 해양정책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트럼프의 속마음 읽기
고환율의 명령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주민투표로 결정되는 부산·경남행정통합
수능 폐지를 위한 10년 교육 실험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의 8대 명당, 김극뉴의 묘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의 생가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트럼프의 ‘윤석열 구하기’ 망상
문민을 국방부 장관으로!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특권의식
유효기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모리스 라벨
겨울 나그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시인 권구현의 ‘금강산 풍경’
‘자연’ 임신의 검정 강아지
CEO 칼럼 [전체보기]
중소기업, 해외시장으로 눈 돌려야
시민을 위한 디자인 수도 부산의 꿈

Error loading images. One or more images were not found.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