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주거지 선택의 조건으로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등 4가지를 거론한다. 지리는 한국의 특권층이 금과옥조로 받들어 모시는 풍수를 의미하고 생리(生利)는 경제적 여건을 뜻한다. 인심의 뜻은 지금과 비슷하다. 이중환은 “마을 인심이 착한 곳이 좋다. 착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란 공자의 말을 인용한다. 산수는 자연풍광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풍수를 제외하면 ‘생리’이다. ‘광(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먹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최우선 과제였다.
부산은 어떤가. 살만한 곳일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부산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57만 명을 넘어 지역별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규모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2019년 46만 3000명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증가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는 부산 전체 임금근로자의 42.3%에 이른다. 전국 특별·광역시·도 가운데 압도적인 꼴찌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전국 평균이 38.2%인 가운데 세종시가 27.7%로 가장 낮고 서울 38.3%, 인천 38.9%, 울산 35.8%, 대구 37.8%였다.
일선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임시직인 기간제 교사의 담임 비율이 부산 21.3%로 전국 17개 특별·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높다. 중·고교에서는 기간제 교사 담임 비율이 무려 40%를 넘는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당연히 부산 근로자 평균 임금은 다른 도시에 비해 낮다. 국세청 연말정산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평균 임금은 연 3793만 원으로 서울 4916만 원의 77% 수준이다. 특별·광역시만 놓고 보면 꼴찌에서 3위이다.
1945년 광복 당시 부산 인구는 28만 명이었다. 한때 388만 명에 달했던 것은 제조업이 만들어낸 ‘일자리’ 덕분이었다. 모두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모여들면서 메가시티 부산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부산 인구는 330만 명선도 무너졌다. 지난 5년 사이에 11만 6000여 명이 부산을 떠났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9세 사이 부산의 청년 인구는 지난해 4만여 명, 올 상반기에는 2만여 명이 줄었다. 떠나지 못하고 남은 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부산의 출산율은 서울 다음으로 낮다. 최근 통계는 더 암울하다. 지난 8월 통계에 따르면 서울 등 다른 지역은 1년 전에 비해 아주 조금이라도 출생아 수가 늘었는데 부산만 유독 3.5%가 줄었다.
30여 년 전 부산시 산하 연구기관의 ‘산업고도화’ 관련 보고서에서 내놓은 부산의 장점은 대학을 졸업한 젊은 인구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부산에 아이 울음소리는 줄고, 청년은 떠나면서 말 그대로 ‘노인’과 ‘바다’만 남은 도시가 되었다. 사람이 떠나면서 빈집도 늘어난다. 부산 주택의 8.6%인 11만 4000여 채가 빈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많다. 인구 대비 빈집 비율이 높은 것이 아니라 빈집 숫자 자체가 많다. 도시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멸 위험단계’에 진입한 것도, 전국의 특별·광역시 가운데 최초이다. 이런 부산에 다시 기회가 있을까?
1980년대까지 고용인원 기준 전국 100대 기업의 3분의 1 정도가 부산에 있었다. 지금 부산에 100대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1000대 기업까지 넓혀도 고작 28곳이다. 2008년의 55곳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설계한 30대와 40대 컴퓨터 공학자가 노벨 화학상을 받는 세상이다. 비트는 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를 뜻하는 데 32비트와 64비트는 10진법 아날로그 세상에서는 고작 2배 차이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18,600,000,000,000,000,000(1경 8000조)’배 차이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ICT 기업의 창업도, 기존 기업의 혁신도 보기 어렵다.
부산은 어떤 도시를 지향하는 것일까? 도시의 브랜드는, 도시의 지향점을 알리는 좌표이다. 부산의 브랜드는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 이다. ‘부산이니까 좋다’ 혹은 ‘지금 부산은 잘 굴러가는 좋은 상태이다’라고도 읽힌다. ‘좋다’고 말하려면 ‘누가’ ‘어떻게 좋은 상태’인가에 대해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IMF 경제위기 당시에도 ‘돈값’을 제대로 느끼면서 건배사를 ‘이대로 영원히’로 하셨던 분이나, 코로나19 때 한적한 섬에서 ‘피신’을 하며 세월을 보낼 수 있었던 회장님의 상태는 ‘좋은’ 것이 맞다. 하지만 ‘소멸 위험단계’에 진입한 도시가 평범한 우리에게도 정말 ‘좋은’ 것일까?
ps : ‘좋음’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여럿 있다. nice, cool, awesome, wonderful, fantastic, outstanding 등. 모두 ‘good’보다 더 나은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다. 영어 친화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시가 그래서 점잖게 ‘good’이라고만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