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치원 갈 나이만 돼도 산타가 있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부모가 산타인 줄 이미 다 알고 아이들도 모르는 척 속아준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가 정말로 선물을 가지고 내 집으로 찾아온다고 믿었다. 그런 시절이었지만 나는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 때 이미 산타가 없는 걸 알게 됐다.
하얗고 풍성한 수염을 달고 아래위로 전통적인 빨간 산타복장을 한 사람이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웃으며 선물을 건넸다. 그런데 수염과 모자에 거의 가려진 그 얼굴이 눈에 익었다. 그때 기억으로 유치원 버스를 운전해주던 원장님 남편이었다. 어린 나는 얼마나 경솔했던지.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선물만 받으면 될걸 왜 산타 얼굴을 들여다 보며 “어, 아닌데, 원장님 아저씨인데”라고 나불거렸을까. 더 웃긴건 선물은 야무지게 챙기면서 그렇게 종알거렸다. 주변의 어른들은 얼마나 김이 샜을 것이며 혹여나 누군가 들은 애가 있다면 나는 그 친구의 산타를 없애버린 장본인이 되는 거였다. 아직도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눈치가 없었는지 놀리신다.
그랬던 내가 아이가 생기고는 얼마나 웃긴 짓을 했는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이의 산타를 조금이라도 오래 지켜주고 싶어 선물을 일부러 누런 종이로 포장하고 멀리서 온 것처럼 표면을 더럽힌 뒤 영어로 주소를 쓰고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곱게 놔뒀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 밤 늦게 선물을 두고 얼마 안돼서 꼬맹이가 갑자기 일어나선 “엄마! 산타 할아버지 온 거야? ”하더니 거실로 뛰어나왔다. 나는 거실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반쯤 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녀석은 “엄마!! 선물이 있어! 엄마 아직 안자고 있었으니까 산타할아버지 봤지?”라며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봤다. 아이고. 얼마나 놀랐던지 대답을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으니 애가 재차 물었다. “엄마, 근데 산타할아버지 우리집 비밀번호 어떻게 알고 들어와? 루돌프는 왜 같이 안왔지?” 아, 산넘어 산이었다.
정신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으응, 그 노래 알지?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계시니까 엄마도 졸고 있을 때 얼른 들어오신거지. 그리고 루돌프는 썰매 지켜야지. 거기 선물 잔뜩 있잖아. 밖에 있지. 루돌프 코가 밝으니까 썰매 비추면서 있어”. 아이는 그제서야 환한 얼굴로 “아! 그렇지! 엄마, 선물 열어볼까?” 라며 넘어갔고 나는 “그래그래. 올해 착하게 잘 지냈으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가셨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유치원 친구들의 산타는 망쳐버린 장본인이 우리 애 산타는 지켜주겠다고 난리법석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진짜 산타는 있다. 연말, 크리스마스 같이 특별한 시간이 다가오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마음은 더 쓸쓸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초록우산은 산타 원정대를 운영하며 소원을 들어줄 산타를 찾고 있다. 아이들이 정성스레 쓴 자신의 소원을 이뤄줄 산타가 될 수 있다는 건 무척 기쁘고 대단한 일이다. 나같이 다른 사람의 멀쩡한 산타를 끝장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경제가 어려워서 나눔을 위한 모금 활동도 덩달아 힘들어졌다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정성을 모아 다른 이를 돕는 소중한 일을 계속 하고 있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나누려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는 자체가 좋은 신호다. 무작정 시작하려면 부담스럽거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수 있다. 그럴 땐 내가 매일 마시는 커피값을 한 달 동안 모아 전달하는 것처럼 실천가능한 도움의 목표를 설정해 보는 것도 좋다.
내 아이의 산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타가 더 절실히 필요한 아이의 산타가 되는 것도 대단히 의미가 있다. 1년에 한 번 꼭 바라는 소원을 들어주는 산타가 되실 분, 여전히 모집중이니 마음을 보태주시길. 당신의 나눔으로 한 아이에게 멋진 기억을 만들어주는 경험을 해보는 걸로 2024년을 마무리하시기를.
최영지 독자여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