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최악의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제4대 대통령 선거로 기록된다. 이승만 독재를 위해 3·15 부정선거에 올인한 자유당은 투표함의 4할(40%) 정도를 이승만 이기붕(부통령)으로 미리 채워놓은 4할 사전 투표, 야당 참관인 쫓아내기, 3~5인이 한 조로 투표하는 사실상의 공개투표 등을 동원했다. 심지어 개표장을 정전시켜 투표함을 통째로 바꾸거나, 야당 후보에 기표한 투표용지에 인주를 묻혀 무효로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에도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 선거개입은 계속됐다. 1967년 6·8선거에서는 지역개발 선심성 공약과 함께 막대한 선거비용 충당을 위해 중앙정보부가 동원됐다. 6·8선거 이후 공작정치가 본격화됐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공안·대북사건 등을 터뜨리면서 선거 때마다 ‘북풍’은 단골 메뉴가 됐다. 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후진적인 관권 선거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대선 총선 등의 결과를 부정하는 음모론은 최근까지 횡행했다. 물론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음모론을 먹이삼은 부정선거의 망령이 결국 계엄선포와 탄핵을 유도했다. 극우 유튜버에 심취한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자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대선 결과마저도 부정하면서 계엄령을 발동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 지난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의 주요 배경으로 부정선거를 꼽았다.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그는 22대 총선 결과가 중앙선관위 선거시스템 해킹 및 데이터 조작 때문이라 했고, 그 근거로 지난해 국정원이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다는 극우 유튜버 주장을 반복했다.
현재 우리나라 선거는 종이 투표로 진행되며, 선거인명부 작성부터 투표와 개표, 결과 공표까지 전 과정에서 여야 정당·시민 참관인이 참여한다. 22대 총선부터는 부정선거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최종 단계에서 다시 한 번 수작업 개표 절차를 추가했다. 실제 부정선거가 이루어지려면 다수의 중앙선관위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 시스템 정보를 해커에게 제공하고, 수많은 사람의 눈을 피해 실물 투표지를 바꿔치기해야 한다. 일부 음모론자를 빼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22대 총선에서 전례없는 여당의 참패가 불통과 실정을 거듭하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오로지 부정선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을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계엄 트라우마’를 남겼다.
임은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