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소년이 온다

  •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
  •  |   입력 : 2024-12-18 18:25:3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원래대로라면 지난주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어야 했다. 두 달 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음악 드라마 영화에 이어 문화예술의 정점으로 꼽히는 문학까지, 세계를 휩쓰는 K-컬처를 보며 높아진 우리 문화의 위상을 한동안 즐기고 자랑스러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느닷없는 12·3 내란 사태로 예정된 기쁨은 가로채였다. 기쁘게 기뻐하지 못하고, 무겁게 기뻐해야 했다.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건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기여한 소설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의 시대 배경이 40여 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재연됐다는 점이다. 5·18 광주민중항쟁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반역 세력의 잔혹한 폭력이 남긴 거대한 상처를 매우 아프게 끄집어낸다. 1980년 전두환 노태우 등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5월 17일 그전 해 내려졌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5·18 학살로 이어진 실제 역사를 다룬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상세히 소개한다. 작가의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가 가르쳤던 중학생과 그 학생네 세 들어 살던 또래 친구, 고모와 인연이 될 뻔한 모 중학교 수학선생의 아내 등 평범했던 이웃이 5·18의 희생자가 됐다는 걸 어릴 적 알게 된 작가에게 광주 소재 글쓰기는 필연이고 숙명이었으리라.

책 제목 ‘소년’을 상징하는 주인공 열다섯 살 동호의 시선으로 그가 찾아 헤맨 친구 정대,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을 지키는 은숙 누나, 선주 누나, 진수 형 등 인물들의 서사를 엮으며 그 시절 국가가, 사회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동시에 극단의 폭력 속에서도 인간은 저항을 통해 얼마나 아름답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상반되게 기록한다.

작가는 책에서 5·18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작가 말대로 2024년 12월 3일 ‘광주’는 다시 태어났다.

한강 작가는 지난 7일 노벨상 시상식 전 기념강연에서 ‘소년이 온다’가 던지는 물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12·3 계엄이 다행히 미수에 그친 건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두 달 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강 신드롬’이 일었다. 작년 말 큰 흥행을 거둔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 영향도 컸다)으로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비상계엄의 위험성을 인식하던 터에 경악할 만한 내란 사태가 터졌다. 대혼란 속에서도 신속하게 계엄이 해제되고,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아픈 역사를 제대로 인식한 시민이 그것이 가져올 막대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온몸으로 장갑차와 무장 군인에 맞서고, 추운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인 덕분이다.

작가가 소년이 ‘왔다’가 아닌 ‘온다’로 표현한 것처럼 비극의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복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힘 또한 계속될 것이다. 잘 이겨내려면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소설 에필로그에서도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희생자를 소재로 글을 쓰고자 양해를 구하는 작가에게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그러므로 12·3을 똑똑히 기억하자. “진실을 추구하는”(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의 한강 평가) 정확한 기록이 문학으로 또는 K-시위를 이끈 영상과 음악으로 “언어로 연결된 우리”(한강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 때 수상소감)를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왔고, 오고, 올 소년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선정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3. 3“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4. 4“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99건
  5. 5[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6. 6“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7. 7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8. 8"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9. 9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10. 10[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1. 1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2. 2[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3. 3[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4. 4李대통령, 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에 “철저 조사 지시”
  5. 5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6. 6李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는 글에 “괴롭힌 거 아냐”
  7. 7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8. 8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9. 9靑, 北 탄도미사일 발사에 긴급회의…“안보리 위반, 즉각 중단 촉구”
  10. 10‘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1. 1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2. 2“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99건
  3. 3"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4. 4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5. 5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급증… 재정 부담 가중될 듯
  6. 6미래대응기금, 국감 쟁점 부상…국회 "재원 지속가능 의문"
  7. 7SK지주 최태원 지분율 3% 하락…최 회장 재산분할 자금 충당
  8. 8카카오 월4900원 멤버십 출시…네이버 쿠팡과 3파전
  9. 9웰컴저축은행도 정보유출…법인고객 정보 2200건 추정
  10. 10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3. 3“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4. 4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5. 5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6. 6울산바위 배경으로 사진 찍다 추락한 70대 등산객 숨져
  7. 7ADHD 치료제 처방 2년 새 38% 급증…“공부 잘하는 약 없어”
  8. 8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9. 9“차량 흔들린다” 술 취해 소화기로 버스기사 폭행한 60대
  10. 10"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3. 3[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4. 4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5. 5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6. 6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7. 7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8. 8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9. 9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10. 10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