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지난주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어야 했다. 두 달 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음악 드라마 영화에 이어 문화예술의 정점으로 꼽히는 문학까지, 세계를 휩쓰는 K-컬처를 보며 높아진 우리 문화의 위상을 한동안 즐기고 자랑스러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느닷없는 12·3 내란 사태로 예정된 기쁨은 가로채였다. 기쁘게 기뻐하지 못하고, 무겁게 기뻐해야 했다.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건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기여한 소설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의 시대 배경이 40여 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재연됐다는 점이다. 5·18 광주민중항쟁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반역 세력의 잔혹한 폭력이 남긴 거대한 상처를 매우 아프게 끄집어낸다. 1980년 전두환 노태우 등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5월 17일 그전 해 내려졌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5·18 학살로 이어진 실제 역사를 다룬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상세히 소개한다. 작가의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가 가르쳤던 중학생과 그 학생네 세 들어 살던 또래 친구, 고모와 인연이 될 뻔한 모 중학교 수학선생의 아내 등 평범했던 이웃이 5·18의 희생자가 됐다는 걸 어릴 적 알게 된 작가에게 광주 소재 글쓰기는 필연이고 숙명이었으리라.
책 제목 ‘소년’을 상징하는 주인공 열다섯 살 동호의 시선으로 그가 찾아 헤맨 친구 정대,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을 지키는 은숙 누나, 선주 누나, 진수 형 등 인물들의 서사를 엮으며 그 시절 국가가, 사회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동시에 극단의 폭력 속에서도 인간은 저항을 통해 얼마나 아름답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상반되게 기록한다.
작가는 책에서 5·18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작가 말대로 2024년 12월 3일 ‘광주’는 다시 태어났다.
한강 작가는 지난 7일 노벨상 시상식 전 기념강연에서 ‘소년이 온다’가 던지는 물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12·3 계엄이 다행히 미수에 그친 건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두 달 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강 신드롬’이 일었다. 작년 말 큰 흥행을 거둔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 영향도 컸다)으로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비상계엄의 위험성을 인식하던 터에 경악할 만한 내란 사태가 터졌다. 대혼란 속에서도 신속하게 계엄이 해제되고,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아픈 역사를 제대로 인식한 시민이 그것이 가져올 막대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온몸으로 장갑차와 무장 군인에 맞서고, 추운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인 덕분이다.
작가가 소년이 ‘왔다’가 아닌 ‘온다’로 표현한 것처럼 비극의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복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힘 또한 계속될 것이다. 잘 이겨내려면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소설 에필로그에서도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희생자를 소재로 글을 쓰고자 양해를 구하는 작가에게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그러므로 12·3을 똑똑히 기억하자. “진실을 추구하는”(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의 한강 평가) 정확한 기록이 문학으로 또는 K-시위를 이끈 영상과 음악으로 “언어로 연결된 우리”(한강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 때 수상소감)를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왔고, 오고, 올 소년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선정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