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황정수의 그림산책] ‘자연’ 임신의 검정 강아지

황정수 미술평론가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4-12-22 18:58:24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근대기 한국미술사에는 치유하기 힘든 두 가지 비극적인 현실이 있다. 식민지 시절 일제에 부역한 친일미술인 문제와 한국전쟁으로 북쪽의 노선을 택한 월북화가 문제이다. 친일 혐의가 있는 미술인에게는 ‘반민족행위자’라는 굴레가, 월북 화가들에게는 ‘빨갱이’라는 족쇄가 씌워졌다. 미술 현장에서 친일미술인으로 낙인찍힌 유명 미술가들은 창졸간에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고, 월북 화가들은 이념 문제로 학교 교육에서조차 이름자가 지워지는 불운을 겪었다. 친일 문제야 이민족인 일본과의 관계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월북 문제는 같은 민족끼리의 반목이라 동족상잔 같은 슬픈 일이었다.

화가 임신의 작품 ‘검정 강아지’.
월북 화가들의 이름조차 ‘김○준’, ‘이○대’, ‘정○여’ 등으로 불완전하게 기록되며 본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게 했다. 대표적인 화가 중의 한 명이 전북 순창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입선 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임신(林愼, 1912~?)’이란 화가이다. 한국에 있을 때나 일본에 유학했을 때 활동이 미미했고, 귀국해 월북하기까지 활동 기간도 짧아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서운(栖雲), 자연(子然), 대조자(大條子), 무경거(無境居)’ 등의 호를 사용했는데, 독특한 호에서 느끼듯 비범한 성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임신이 출중한 그림 실력을 가졌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다보니 미술계에서 우스운 일이 많았다. ‘임신’이란 이름이 ‘여성이 아이를 가진 상태’를 의미하니, 듣는 이들이 사람 이름인 줄 몰라 뒤늦게 웃기도 했다. 더욱이 화가를 부르는 풍습대로 대표적인 호인 ‘자연’을 앞에 붙여 부르면 ‘자연 임신’이 되어 더 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고 작품이 좋은데도 그가 세상에 덜 알려진 것은 활동 기간도 짧았고 작품도 흔치 않아 시중에도 작품이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기 화가를 연구하는 이 중에도 임신이란 작가를 아는 이가 적을 정도였다. 그러나 임신은 동시대에 활동한 다른 작가 못지않게 작품의 수준이 높았다.

그는 일본에 유학해 곤도 고이치로(近藤浩一路) 문하에서 수묵을 위주로 한 몰골체 기법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광주의 정신으로 존경받던 의재 허백련 문하에 들어가 활동했다. 금강산 여행 후 깊은 감동을 받아 자주 그곳의 풍경을 그렸다. 금강산의 절묘한 산세를 진한 수묵으로 거칠게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필치로 수채화처럼 맑게 그리기도 했다. 산수 뿐만 아니라 화조 인물 영모화 등 여러 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특히 외곽선을 생략하고 오직 먹만으로 그린 영모 작품은 섬세한 필치 뿐만 아니라 짐승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생동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1940년대 후반에 삽살개를 닮은 ‘검정 강아지’를 그린 작품이 전한다. 가능한 한 선묘를 줄이고 오로지 검은 빛 먹물의 농담만을 사용해 강아지의 모습을 그렸다. 화제에 쓰여있는대로 ‘우란(又蘭)’이란 호를 사용하던 이의 회갑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린 것이다. 우란이란 이가 개띠였던 모양이다. 어린 강아지를 그림으로써 60번째 탄생일을 기념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는 어딘가 모르게 두려운 눈빛을 하고 얌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임신은 부드러운 모필을 사용해 먹의 농담을 조절해가며 강아지의 모습을 채워나갔다. 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북한 털의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앉아있는 자세가 어색하지 않도록 잘 표현했다. 이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면 중국, 일본의 어느 명가 못지 않은 솜씨라 할 만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2. 2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3. 3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4. 4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5. 5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6. 6‘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7. 7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8. 8“한국 핵 잠수함·전작권 전환, 美 민주 승리로 제약 커질 듯”
  9. 9부산으로 이주하고, 먼 여행 떠나고…두 여자 그림이 달라졌다
  10. 10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3. 3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4. 4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5. 5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6. 6[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7. 7'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8. 8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9. 9곽규택 “산은, 대한항공이 통합 LCC 부산 설립 거부시 호반지원해야”
  10. 10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4. 4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5. 5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6. 6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7. 7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8. 8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9. 9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10. 10부산 ‘에이지테크’ 해외 노크…日 시니어 시장 진출 길 열어
  1. 1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2. 2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3. 3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7. 7문 전 대통령 거제생가 복원, 진통 끝 시의회 통과
  8. 8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6일
  9. 9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10. 10김해·전주시장 “특례시 기준 낮춰달라”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3. 3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공재
선출 권력 통제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능인선원, 체불임금마저 대여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미 민주당 상·하원 장악…통상·안보 전략 재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