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미국 36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1973년 11월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고 아는 것도 없다고 밝힌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에서의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가 법원에 제출되자 거짓말이 탄로 났다. 그는 탄핵을 앞둔 1974년 8월 9일 미국 현직 대통령 최초로 사임했다. 미국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면 탄핵 대상이 된다. 르윈스키와 백악관 섹스 스캔들이 불거진 빌 클린턴 대통령도 “성적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는 거짓말이 들통 나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입벌구(입만 열면 구라)’평가를 받는다. 4년 재임 기간 3만 건이 넘는 거짓말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자기 생각을 진실인 양 트위터에 올렸기 때문이다. 재선에 도전한 2020년 선거 결과에 불복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렸다. 이를 믿은 지지자들은 이듬해 초 당선 절차를 이행하던 미국 의사당을 공격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얼토당토않은 ‘큰 거짓말’로 악명을 떨쳤다. 미국 영국 러시아에서 막후 권력을 쥔 유대인들이 독일인 박멸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홀로코스트의 논리로 삼았다. 큰 거짓말의 효과를 알았다. 믿기 힘든 큰 거짓말은 오히려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에게 거짓말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천 개입 의혹을 해명한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누구를 공천 줘라 이런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정진석 실장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검찰이 명태균 휴대전화를 확보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명 씨를 향해 공관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에게 한 번 더 전화하겠다고 말한 녹취가 나온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후 대국민담화에서 소수의 병력을 투입해 국회를 해산시킬 의도가 없었다고 했으나 검찰의 계엄 피의자 수사 결과는 이와 달랐다. 이들은 4700명이 넘는 군인과 경찰을 투입했고 대통령이 총과 도끼 사용을 언급했다고 얘기했다. 비상계엄을 국방장관과만 논의했다는 말도 가담자들의 진술과 어긋났다.
오랫동안 정치인의 거짓말을 연구한 노르웨이 베르겐대 라르스 스벤젠(철학과) 교수는 저서 ‘거짓말의 철학’에서 거짓말은 지지자를 자기 의지에 예속시키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지도자가 불신의 여지를 허용하는 ‘반성적 신뢰’를 구한다면 권위주의 지도자는 ‘맹목적 신뢰’를 명령한다고 했다. 신뢰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최현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