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내란과 직권 남용 혐의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하는 모습을 지난 3일 실시간 현장 중계로 지켜보았다. 정식 법 집행이 물리력을 동원한 집단 반발에 막히는 장면 앞에서 먼저 생각난 개념은 법치·전례·선례였다. 법으로 다스린다는 철학과 방식이 법치인데, 법은 벽에 부딪혔고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선례는 선례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다른 영역에서 범법 혐의를 받는 자가 정식 법 절차를 거부하거나 거기에 반발하는 식으로 악영향이 커지지는 않을지 걱정도 들었다. 뒤이어, 말로만 듣던 내란이란 저와 비슷한 양상으로 우리 현실에서 구현되겠구나 하는 실감이 따라왔다.
혼란스러웠던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가 사무쳤다.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시점이니 더욱 그러했다. ‘답설야중거’라는 제목은 ‘눈 덮인 벌판을 걸어갈 때’로 옮길 수 있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오래전부터 전하는 이 시를 아끼고 좋아해 붓글씨로 써서 남겼다. 검색하면 쉽게 백범의 글씨로 남은 ‘답설야중거’를 만날 수 있다. 여기 옮겨본다.
시의 뜻은 이렇게 새긴다. “눈 덮인 벌판 걸어갈 때/ 어지러이 함부로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걸으며 남긴 이 발자국은/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원문 또한 단출하고 간결하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힘겹고 무서웠던 일제강점기에 백범처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의 마음을 잃지 않은 어른이 있어서 고맙다.
윤 대통령 탄핵과 내란을 둘러싼 상황 전개를 보며 기성세대로서 정신이 번쩍 든다. 새해에도 차가운 거리로 뛰쳐나가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젊은 세대의 간절함은 희망과 함께 일종의 위기감도 몰고 왔다. 눈 멀고 귀 닫고 공감할 줄 모르는 권력자의 손에 법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엄청난 위기에 처한 ‘눈 덮인 벌판’ 같은 현실 그 자체가 위기감의 근거다.
2025년 을사년 벽두, ‘답설야중거’를 거듭 떠올린다. 미래세대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인가. 현상을 살피면서 잘 헤아리면, 문제는 단순하다. 복잡한 요설에 흔들려 어지럽게 걸을 이유가 없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 헌법이 규정한 조문에 비춰보며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그 걸음이 뒤에 올 이들의 이정표가 됨을 기억하면서.
조봉권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