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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당시인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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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을 그때라고 본다. 2020년 8월 3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임 검사 신고식. 윤석열 검찰총장이 메시지를 낸 건 한 달여 만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을 겨냥한 ‘먼지 털이식 수사’에 이어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극심한 갈등을 빚던 때다. 조 전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아 검찰 개혁 기치를 올리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급기야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 총장의 운신을 어렵게 했다.
윤 총장은 감정의 핏대를 세웠다. 새파란 검사들에게 말했다.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
수위가 높았다. 의도가 쉽게 노출됐다.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반정부 투쟁 선언 아닌가” “정치를 하고 싶다면 검찰총장을 그만둬라” “윤 총장 해임안을 제출해야 한다”며 펄펄 끓었다. 반면 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쌍수를 들었다.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 “함께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자” “검찰총장다운 결기다”며 열렬히 환영했다.
윤 총장의 피아가 한 치 의심도 없이 확실하게 바뀌었다. 그를 임명하려 애썼던 여당은 이제 더는 ‘우리 편’이 아님을, 다음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정적이 될 것임을 직감했을 테다. 그의 임명을 막으려고 칼날을 세웠던 야당은 정권 교체를 위한 선수를 찾았다고 환호했을 거다. 그러므로 바로 그때를 윤석열 검사가 작정하고 정치인이 된 순간으로 본다.
차기 대선을 1년 반가량 남겨 놓은 시점. 윤 총장은 유력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이낙연·이재명 양강구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이름 빼 달라”고 했지만, 보수층 유권자는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점찍었다. 그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마침내 양강으로 올라선 무렵,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사퇴했다. 이어 그해 6월 29일 “자유와 법치를 부정하는 세력이 집권을 연장해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무너진 법치와 상식을 바로 세우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신임 검사들 앞에서 정치인이 된 그때와 다를 것 없는 발언이다. 결국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앞세워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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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8일 심우정 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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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옛날얘기다. 지금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됐나. 지난달 ‘12·3 비상계엄’을 발동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국회 창문을 깨부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한 순간 그가 주창해온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망가졌다. 오히려 그가 혐오했던 독재와 전체주의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부활했다.
법치는 또 어떻게 됐나.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했다. 경호처든 여당 국회의원이든 극우 유튜버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친위부대’로 스크럼을 짰다. 차벽을 세우고 철조망도 쳤다.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고 항변하고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지시로 비상계엄 선봉에 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미 검찰에 구속기소돼 피고인 신분이다.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는 ‘피고인’보다 ‘대통령’이란 단어가 더 많이 나온다. ‘대통령실’ ‘대통령비서실’을 제외하고 ‘대통령’만 141번 등장한다. 반헌법적 계엄 주체가 윤 대통령이란 걸 그가 ‘거느렸던’,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가르쳤던’ 검찰이 인정했다. 대한민국 수사기관과 법원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법치를 말할 순 없다.
최근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누리집에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을 직접 겨눴다. 이렇게 썼다. ‘마치 법의 화신인 양 우쭐대던 사람인데 자기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것 같으니 이젠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무시해버린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법을 공부했길래 검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이 그런 무식한 발언을 감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무법천지의 시대로 들어가려는 것 같다’.
한남동 ‘요새’에 피신한 윤 대통령은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대비해 초강력 방어막을 둘렀다. 한술 더 떠 수사기관을 상대로 ‘체포영장 말고 구속영장을 쳐라, 아니면 기소하라, 대신 서울서부지법은 안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여전히 극우 지지층이 결집할 시간을 벌려 정국 불안을 키우고 사법부를 흔든다. 탄핵 심판 출석 약속도 뒤집었다. 이게 그가 신임 검사들에게 가르쳤던 법치인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피의자 맘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나라였나.
2024년 12월 3일 6시간짜리 정치 드라마에서 시작된 혼돈의 시리즈물이 하루빨리 종영하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의 ‘국난 극복’ 특기를 믿는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그나마 ‘처단’당하지 않고 신문에 글 쓸 수 있음을 위안 삼는다.
권혁범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