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후 좀 특별한 옥중서신을 공개했다. 1978년 서울대병원에서 일명 ‘병원감옥’ 수감생활을 할 때 감시를 피해 못으로 쓴 편지다. DJ는 유일하게 면회가 가능했던 부인 이희호 여사를 통해 메모지를 반입해 필기구 대신 못으로 글을 남겨 세상에 내보냈다. 그저 평범한 종이 같지만 음영을 넣으면 한자 한자 눌러 쓴 흔적이 뚜렷하다. 편지엔 이런 대목이 있다. ‘정세에 큰 변화가 올 것이오’. 유신 체제의 종말을 알린 10·26 사태가 일어나기 1년 전이다.
‘나라 장래가 염려돼 마음이 편치 않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 헌정사 최초로 탄핵으로 직을 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 3년 만인 2020년 3월 측근을 통해 내놓은 서신 중 일부다. 21대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공개된 이 편지는 “문재인 정권에 대항하라”는 주문이나 다름 없었다. 친박 태극기 부대는 “선거의 여왕이 드디어 움직였다. 200석도 가능하다”고 흥분했지만, 정작 선거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참패로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 정치가 논란이다. 내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폭력 난동 사태가 벌어지자 변호인단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은 묘하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 달라”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겠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구속 수감까지 윤 대통령이 외부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버틸 때부터 주요 국면마다 메시지를 발신했다. 급기야 공수처가 증거 인멸 우려 등으로 변호인 외 접견을 금지한데 이어 서신 수신과 발신마저 막아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요즘 서신 정치에 열심인 인물이 또 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받고 수감된 조 전 대표는 수감 직후부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 간격으로 당원과 지지자들을 향해 편지를 쓰고 있다. 저의가 있을 수도, 그저 대중의 망각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철창 너머 조급함에서 비롯된 메시지 정치를 보나,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수처의 서신금지 조치를 보나, 대한민국의 시간만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