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주산지에 갔을 때 일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바람도 심상찮게 불었다. 부는 바람에 호수의 물은 흐린 낯빛으로 일렁였다. 그 300년의 침묵 속에서도 왕버들은 물속에 의연하게 서 있었다. 나무는 뿌리의 음습한 고난에도, 가지는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한 왕조가 저물고 사직이 기우는 세월 속에서 부드러운 목숨을 크게 다져왔을 것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순간순간을 말없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직이 기울고 다시 일어서는 흥망성쇠의 아픔도 속으로 삼켜왔을 것이다. 역사의 간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나무의 그 견고한 생각에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주산지에서의 내 짧은 머무름과 순간의 생각이 정말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한 평생 아귀다툼도 한 알 모래알보다 못하고, 생각의 겨룸과 오만도, 수면 위의 산 그림자에도 못 미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는 뉘우침도 덧대어 일어났다. 저 아래 사람 사는 마을의 일도 이곳 주산지에서는 눈 한번 깜박일 신기루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도 스쳤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옳으니 그르니, 모든 것이 다 왕버들 나무 말랑한 새순보다 못한 먼지 같은 다툼이었을 것이다. 후손이 세운 저수지 축조에 대한 공덕비를 보면서, 그분은 얼마나 농민들을 믿었고 사랑했기에 이런 일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게 아려왔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국회의 계엄령 해제 건의안이 가결되는 순간, 지난해 4월 그 어느 날 주산지에 가서 깨달음을 얻었던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 그 생각의 단초가 내내 궁금했다. 뒤이어 순자의 ‘왕제(王制)’ 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가르침이다. 군주가 아무런 탈 없이 지내고자 한다면, 정치에 있어서 사사로움이 없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민본주의의 실현이 곧 우리의 소망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꼬리를 이었다. 논어 ‘위정(爲政)’ 편의 믿음의 철학도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공자와 제자 자공과의 그 유명한 대화이다. 군대와 식량은 포기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애당초 군주는 존재할 수 없다고 공자는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가 통제되고 인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국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마련한 ‘빈자일등(貧者一燈)’만이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는 정성스럽고 소중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삿된 생각을 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인은 국민에 대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이인위본(以人爲本)’의 정신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 뜨락의 동백나무는 도저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꽃망울이 여전히 그대로다. 다른 곳에선 동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선혈을 내비치고 있다는 개화 소식도 이따금 들려온다. 이것들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꽃망울 열기를 주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열흘 붉은 꽃 없듯이 권력 또한 무상함을, 동백 꽃망울이 그 낌새를 머뭇거림의 행동으로 은유하고 있을 거라는 별의별 생각까지 다 든다. 3월 봄날의 절정에 동백 꽃망울이 툭, 툭 온몸으로 몸져누울 무렵이면 우리네 가슴에도 온기가 스며들고, 자영업자들의 가게 안에서도 웃음소리와 함께 ‘봄날은 간다’는 노랫소리라도 들리길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봄날의 기적을 하나의 위안거리라도 삼아야 할 것 같다. 시인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우리에게는 언제 이 잔인함이 끝날지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