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주산지에 갔었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  |   입력 : 2025-02-04 18:44:1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해 4월 주산지에 갔을 때 일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바람도 심상찮게 불었다. 부는 바람에 호수의 물은 흐린 낯빛으로 일렁였다. 그 300년의 침묵 속에서도 왕버들은 물속에 의연하게 서 있었다. 나무는 뿌리의 음습한 고난에도, 가지는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한 왕조가 저물고 사직이 기우는 세월 속에서 부드러운 목숨을 크게 다져왔을 것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순간순간을 말없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직이 기울고 다시 일어서는 흥망성쇠의 아픔도 속으로 삼켜왔을 것이다. 역사의 간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나무의 그 견고한 생각에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주산지에서의 내 짧은 머무름과 순간의 생각이 정말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한 평생 아귀다툼도 한 알 모래알보다 못하고, 생각의 겨룸과 오만도, 수면 위의 산 그림자에도 못 미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는 뉘우침도 덧대어 일어났다. 저 아래 사람 사는 마을의 일도 이곳 주산지에서는 눈 한번 깜박일 신기루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도 스쳤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옳으니 그르니, 모든 것이 다 왕버들 나무 말랑한 새순보다 못한 먼지 같은 다툼이었을 것이다. 후손이 세운 저수지 축조에 대한 공덕비를 보면서, 그분은 얼마나 농민들을 믿었고 사랑했기에 이런 일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게 아려왔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국회의 계엄령 해제 건의안이 가결되는 순간, 지난해 4월 그 어느 날 주산지에 가서 깨달음을 얻었던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 그 생각의 단초가 내내 궁금했다. 뒤이어 순자의 ‘왕제(王制)’ 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가르침이다. 군주가 아무런 탈 없이 지내고자 한다면, 정치에 있어서 사사로움이 없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민본주의의 실현이 곧 우리의 소망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꼬리를 이었다. 논어 ‘위정(爲政)’ 편의 믿음의 철학도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공자와 제자 자공과의 그 유명한 대화이다. 군대와 식량은 포기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애당초 군주는 존재할 수 없다고 공자는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가 통제되고 인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국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마련한 ‘빈자일등(貧者一燈)’만이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는 정성스럽고 소중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삿된 생각을 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인은 국민에 대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이인위본(以人爲本)’의 정신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 뜨락의 동백나무는 도저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꽃망울이 여전히 그대로다. 다른 곳에선 동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선혈을 내비치고 있다는 개화 소식도 이따금 들려온다. 이것들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꽃망울 열기를 주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열흘 붉은 꽃 없듯이 권력 또한 무상함을, 동백 꽃망울이 그 낌새를 머뭇거림의 행동으로 은유하고 있을 거라는 별의별 생각까지 다 든다. 3월 봄날의 절정에 동백 꽃망울이 툭, 툭 온몸으로 몸져누울 무렵이면 우리네 가슴에도 온기가 스며들고, 자영업자들의 가게 안에서도 웃음소리와 함께 ‘봄날은 간다’는 노랫소리라도 들리길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봄날의 기적을 하나의 위안거리라도 삼아야 할 것 같다. 시인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우리에게는 언제 이 잔인함이 끝날지 아득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3. 3‘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4. 4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5. 5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6. 6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7. 7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8. 8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9. 9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10. 10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1. 1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2. 2‘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3. 3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4. 4'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5. 5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6. 6李 대통령, AI에 물었다…“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불가는 억지”
  7. 7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8. 8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9. 9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10. 10[2026 국감 브리핑]용혜인 “부산 119구급 스마트시스템 이용률 1%, 전국 최하권”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4. 4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5. 5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6. 6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7. 7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8. 8“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9. 9"세무조사 때 금품·향응 수수"…국세청 직원 5년간 31명 징계
  10. 10동남아 접수하러 ‘부산표 게임’ 방콕행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4. 4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5. 5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6. 6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7. 7APEC공원·금련산역 러너지원공간 문 열어
  8. 8“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9. 9[속보]20일 부산서 70대 남성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사망
  10. 10피습 자작극 정이한, 모친 증인 신청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3. 3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4. 4"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5. 5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6. 6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9. 9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10. 10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주당 ‘13.7시간’ 고용
발가벗겨진 사우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미래대응기금, 지방재정 기반 흔들어선 안 된다
단일종목 ETF 졸속 심사 인정…책임 소재 밝혀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문화예술의 시대
다민족 사회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