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과 영아사망률은 건강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OECD 보건통계 2024’를 보면, 한국의 기대수명은 83.6년(OECD 평균 80.6)으로 OECD 3위다.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 당 2.4명(OECD 평균 4.1)으로 OECD 9위다. 성적이 좋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단연 으뜸은 역동적 경제성장으로 인한 소득 증가와 생산성 높은 보건의료체계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경제 악화에 더해, 보건의료체계의 거시적 비효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우리 경제가 다시 역동적 성장을 하도록 담대한 혁신을 추진하는 것과 보건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향하는 상황에서 이런 본질적 개혁은 매우 절박한 과제라 하겠다.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임상의사 수는 2.2명으로 OECD 꼴찌다. OECD 평균은 3.8명이고, 독일 4.6명, 프랑스는 3.2명이다.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의 58%, 독일의 48%에 불과한데, 장차 더 나빠질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한 해 의과대학 졸업생은 3000명이고, 인구 10만 명 당 5.8명이다. 독일은 1만320명이 졸업해서 인구 10만 명당 12.2명, 프랑스는 8069명 졸업으로 12.1명이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프랑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에도 우리나라는 압도적으로 높은 ‘의사 생산성’ 덕분에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심지어 양적·질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 한계에 도달했다. 경제성장 둔화와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재원 조달 능력을 초과하는 의료 수요의 폭증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병원과 치료 중심 기존 의료체계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지나치게 낭비적이고 거시적으로 비효율적이다.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D 평균(4.3)의 3배이며, 독일(7.7)과 프랑스(5.5)를 압도한다. 병상 과잉은 불필요한 입원을 낳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환자 1인당 평균재원일수는 19.6일로 OECD 평균(8.1)이나 독일(8.9)과 프랑스(9.1)보다 훨씬 길다.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도 연간 17.5회로 OECD 평균(6.3)의 2.8배이며, 독일(9.6)과 프랑스(5.5)보다 훨씬 많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의료비(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의료비의 비중)가 폭증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의료비의 ‘연평균 증가율’이 2000년대(2000~2009년) 11.9%, 2010년대(2010~2019년) 8.7%였다. 2022년 국민의료비는 국내총생산의 9.7%로 이미 OECD 평균(9.2%)을 넘어섰다. 문제는 증가 속도가 OECD에서 가장 빠르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2015년 6.7%에서 2023년 9.9%로 급증하는 동안, 독일은 11.2%에서 11.8%로, 프랑스는 11.4%에서 11.6%로 조금만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속 가능성의 뚜렷한 대조라 하겠다. 늦었지만, 이제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고 비급여 진료의 공적 통제를 확충해야 한다. 적절한 정부 개입을 통해 보건의료의 시장실패를 교정하자는 것인데, 실제 우리나라는 ‘경상의료비 중 정부·의무가입제도의 비중’이 64.1%에 불과한데, OECD 평균이 75.5%, 독일 86.7%, 프랑스 84.7%라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둘째,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원래의 3058명에서 400∼500명 늘리도록 정치·사회적 타협을 도출해야 한다. 단, 독일 일본 사례에서 보듯이 증원분 전부를 지방 국립의대를 중심으로 할당하되 졸업 후 약 15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특별 입학전형을 실시해야 한다. 이는 지방·지역의 의사 수 절대 부족과 지역소멸에 대응하려는 최소한의 조치다. 셋째, 병상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고,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병원 중심에서 일차 의료 중심으로, 사후적 치료 중심에서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중심으로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20년 동안 지역사회의 주민과 환자를 중심으로 건강·질병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건강주치의 제도가 그것인데, 덕분에 이들 나라의 보건의료체계는 양질의 지속 가능성을 획득했다.
건강주치의 제도가 도입되면, 우리나라도 중·장기적으로 2명 이상의 가정의·전문의에 더해 간호사·물리치료사 등의 전문인력이 한 곳에서 일하는 외래 의료센터로서 ‘다분야 그룹 주치의 의료기관’이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이들의 전문성과 유능함을 믿고 등록한 주민과 만성질환자들에게 주치의는 건강증진·질병예방·조기발견·치료·추후관리·질병감시·방문진료 등의 포괄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병원으로 환자를 의뢰하고 퇴원 후 회송 받아 협력적으로 통합적 치료·관리를 지속하고 통합 돌봄과 복지까지 연계하는 유능한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이야말로 보건의료체계의 질 높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