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지구 사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 찍힌 게 25년 전 이맘때다. 1990년 2월 14일 미국항공우주국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0억km 떨어진 먼 우주에서 촬영했다. 보이저 1호가 1997년 9월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됐고, 지구와 태양 거리가 1억5000만㎞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우주라는 차원에서 지구와 인간을 자각하는 계기였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이 사진 촬영을 주도했던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던진 말이다.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후폭풍과 인종·종교·문화·젠더·경제 갈등을 보면 아직 지구인은 책임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임계치를 오가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이어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만 3년이 지났으나, 정작 종전 협상에선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상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시하는 힘의 논리는 새로운 위협이다.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양극화에 리더십 위기가 겹쳤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자랑스런 문화강국이란 자신감은 온데간데없다. 외교·안보·경제에 불어닥친 3각 외풍에 더해 느닷없는 비상계엄 사태가 초래한 심리적 내전 상태를 겪고 있다. 뒷걸음질 치는 삶의 질은 겹겹이 쌓이며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증거할 것이다.
통계청이 24일 내놓은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4년만에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로 하위권을 맴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7.3명으로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매우 안전 또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비율은 2024년 29.9%로 2022년보다 4.4%포인트나 떨어졌고, 2023년 기관 신뢰도에서 법원(48.5%) 검찰(44.5%) 국회(24.7%) 등이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특히 삶의 만족도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연령이 높을수록 낮은 경향이라는 점이 걱정스럽다.
시간은 삶 자체이며 시간 사용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순간순간 노력이 경이로운 결과로 이어진다. 보이저 1호는 여전히 우주 공간을 탐사하고 있다. 잠깐 멈춰 지금 우리가 사는 이유를 되묻자. 그래야 미래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