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1875~1937·사진)은 드뷔시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근대작곡가이다. 올해는 이 라벨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많은 음악회가 라벨의 음악들로 꾸며질 것 같다. 흔히 라벨의 음악은 인상주의나 신고전주의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사실 라벨의 음악은 그보다 더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다. 그의 음악을 말할 때 신비 마술, 이런 단어들이 자주 인용되는데 이것은 사조와 상관없는 라벨음악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혹자가 라벨에게 드뷔시를 모방한 것이 아니냐고 했을 때 라벨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나이로는 어리지만 음악으로는 앞서가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라벨의 음악엔 특히 세련된 절제미와 이국적인 화려한 요소가 뒤섞여 있고 정교함의 극치와 대가의 음악적 통제력이 엿보인다. 이런 완벽한 기교와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 때문에 오히려 선율에 담긴 감동과 작곡가의 고뇌에 찬 내면의 심리가 종종 빛을 잃기도 했다. 그는 조성을 유지하고 과거의 형식을 재구성함으로써 신고전주의의 등장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 그는 대담하게도 순수음악과 오락음악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했다. 피아노협주곡 등에선 재즈의 어법이 심심찮게 보인다.
라벨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에서 바스크계의 어머니와 스위스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그의 음악에 보이는 정교함, 이국적 취향을 보면 이런 그의 출생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14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라벨은 재학 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해 이미 주목받는다. 그러나 그의 음악원 시절은 소위 ‘라벨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파리 음악원에선 로마로 유학을 보내 견문을 넓히는 로마대상이란 작곡 콩쿠르가 있었다. 그런데 파리 음악원은 이 콩쿠르에서 당시 이미 유명했던 라벨을 탈락시키고 만 것이다. 이 여파로 음악원장이 바뀌고 학교가 구설수에 올랐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탈락을 하면서 라벨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는다. 라벨은 훗날 프랑스 정부가 주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절함으로써 거기에 대해 답례한다.
그러나 라벨은 애국자였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40대의 나이에도 입대를 지원한다. 그러나 나이와 왜소한 체구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탈락하자 운전병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때의 참전에서 나온 음악이 바로 ‘쿠프랭의 무덤’이다. 고전모음곡 형식의 이 작품은 프랑스 바로크의 작곡가 쿠프랭을 오마주하면서도 6개의 악장이 모두 1차대전에서 전사한 친구들을 추모하고 있다. 전쟁과 관련된 또 하나의 걸작은 1차대전에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켄슈타인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이다. 피아노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피아노 모음곡 ‘밤의 가스파르’이다. 옹딘, 교수대, 스카르보의 세 곡 중 특히 스카르보는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연주하기 어렵다는 난곡으로 유명하다. 그외 볼레로, 라 발스, 치가느 등은 대중적이면서도 이국적 취향이 잘 나타나는 작품들이다.
라벨은 다작의 작곡가는 아니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모두 다작인데 나는 다작이 아니야!”라고 스스로 자탄했다고 하지만 사실 대다수의 현대작곡가들의 작품은 앞선 조성음악의 시대보다 다 적다. 작곡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을 스위스 시계장인 같다고 했다. 라벨의 정교한 작품을 보면 왜 시계장인인지, 왜 과작인지 다 이해가 된다. 라벨의 음악은 이런 강한 독창성 때문에 아류가 없다. 그는 누구보다 프랑스적이면서도 또한 이국적이다. 올해는 라벨의 음악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