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사건이 한창 진행되던 2004년 4월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에는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었다. 그 출발점은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사이언스 코리아(Science Korea) 운동’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제16대 대통령(노무현) 탄핵심판청구를 심판하던 기간(2004년 3월 12일~5월 14일) 권한이 정지됐던 대통령을 대신해 당시 고건(국무총리) 권한대행과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과학의날인 4월 21일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을 선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서울대 총장, KT와 포스코 사장 등 각계 명사들로 구성된 민관 합동 운동본부도 발족했다.
운동본부는 이후 단 한 차례 회의를 한 것 이외 실질적인 지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면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은 우리나라 과학문화를 대중화하는데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이때부터 그동안 과학기술계를 주요 타깃으로 했던 정책이 전 국민을 고객으로 삼았다. 혁명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의 핵심적인 사업은 생활과학교실이다. 2003년 서울 영등포구 3개 교실에서 시범 운영된 생활과학교실은 2004년 9월 부산에서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학교 밖 과학교육’으로 진화하면서 전국으로 확산했다.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 등 정권이 다섯 차례 교체됐어도 생활과학교실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생활과학교실 강사들이 과학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20년 전 생활과학교실을 접했던 수강생 상당수는 과학고와 카이스트 등 이공계에 진출했다. 노벨과학상을 받을 미래 인재도 많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지고 과학문화 저변이 넓혀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2020년에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일선 자치단체와 연계해 지역별 과학문화거점센터를 창설했다. 부산시와 부산과학기술협의회가 공동 운영하는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는 과학문화해설사 양성과 과학축제 등을 주도하며 과학문화 확산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등 문화축제와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을 만큼 호평받은 과학과 문화의 결합이었다. 올해는 과학과 음악의 융합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과학(Science)과 문화(Culture)를 버무린 ‘과학문화’라는 용어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일 사람이 적지 않다. 인류사회 생활양식의 총체인 문화와 과학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고대사회부터 인간이 자연현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된 과학은 관찰한 현상을 분석하고 가설과 검증 단계를 거쳐 인간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문화 발전을 이끌고 있다.
인간의 뇌 기능은 오묘하다. 논리와 언어적 판단을 하는 좌뇌는 객관적인 사고 능력을 발휘한다. 감정과 주관적 판단을 하는 우뇌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사고 능력이 있다. 인류사회는 좌뇌(과학)와 우뇌(문화)의 조화로운 활동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고 있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하는 부산과학축전 주제는 ‘과학과 문화의 앙상블’이다. 오는 4월 12일과 13일 행사장(벡스코 제1전시장 3홀)은 ‘르땡(프랑스어로 장난꾸러기) 놀이터’와 ‘쁘띠(작은) 과학관’ ‘에꼴(학교) 실험실’ 등 과학과 문화가 만나는 이색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공연과 강연으로 구성된 과학 콘서트 ‘사이언스 꽁뜨(이야기)’는 관람객들의 흥미를 더할 전망이다.
AI(인공지능)와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를 앞두고 있다. 과학과 문화 영역을 굳이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생활양식도 알게 모르게 싹 트고 있다. 시대 흐름에 능동 대응한 주제와 프로그램을 선정한 이번 부산과학문화축전에서 새로운 세상을 먼저 접할 수 있다. 과학과 문화가 앙상블을 이뤄 속속 진행되는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