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경기는 AI 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AI시대를 연 주인공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2년 11월에 등장한 챗GPT였다. AI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희망과 공포가 공존한다. 그것이 일확천금이든 아니면 지식 공유에 대한 환희이든 대다수 사람은 희망을 꿈꾼다. 반면 사람들이 AI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일자리 문제다. 만약 인간이 AI와 전쟁을 치른다면 바로 이 부분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질 전쟁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챗GPT는 생성형 AI이다. 생성형 AI란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대화 동영상 음악 등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AI를 말한다. 사용자와 의사소통하고 창작을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생성형 AI의 이런 특징 때문에 인간의 노동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대체 수준인데, 현재까지의 기술 수준으로도 거의 완전한 대체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예컨대 컴퓨터 버전과 자연어 처리에 있어서는 평균적인 인간 수준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일부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지적 능력 역시 검증되었다.
그러므로 법률적·제도적 장벽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쟁력 약화를 피하기 위한 기업의 AI 도입은 장기적으로는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 2024년 KDI의 한 연구보고서는, 2030년이 되면 현재 일자리의 90%에서 직무의 9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기술적으로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직무가 가까운 미래에 자동화가 가능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망은 생성형 AI의 확산 속도와 맞물려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지난 2월 말 현재 챗GPT 주간 활성 사용자는 불과 2개월 전보다 33% 증가한 4억 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생성형 AI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결합되는 단계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자리 문제는 본질적인 변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결합은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교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성형 AI와 만나서 만들 새로운 미래는 산업현장은 물론 실생활에서 상상 불가능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10년쯤 후에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로봇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인간을 닮은 로봇과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은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산업혁명을 비롯한 그 모든 기술 발전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기존 일자리는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됐다. 물론 대체는 여러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급하게, 혹은 서서히 진행된다. 직종에 따라서도 그 속도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 일자리는 거의 완전히 달라질 테고, AI 역시 기존 일자리의 대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대체되는 일자리 상당수에 AI나 로봇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체제를 뒤흔드는 본질적인 위기에 가깝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AI시대 일자리에 대한 담론으로 주로 제시되는 것은 ‘교육’ 정도이다. 이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매우 안일한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간혹 주 4일 근무제나 로봇세 같은 것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아이디어 수준에 그친다. 작금의 변화는 인간의 노동 자체가 배제(해방)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초기 단계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새로운 ‘체제’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관성이 아닌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이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 운동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노사단체는 물론, AI전문가, 벤처투자자, 기업인, 그리고 시민이 참여하는 운동, 혹은 사회적 토론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이름이 뭐든 이를 통해 담론이 형성된다면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담론이라는 성공 사례가 있다. AI가 가져올 일자리의 변화, 그로부터 파생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시민 운동, 해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