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의 ‘문전성시’ 기명칼럼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부산이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전국적인 문명도시로, 역사적인 미래도시로 발돋움해 세계 손님이 부산 문앞(항구 공항 역 거리거리 등)으로 몰려드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무려 6000㎞가 넘는다는 실크로드를 옮겨 다니며 동서의 문물을 전하던 실크로드상인 민족 소그드(sogd)상인들은 언제나 몸에 실크로드 곳곳에 있는 주요 주둔지의 군대가 발급한 통행증을 지니고 다녔다. 2000년 전 영국 런던의 테임즈 강가로 진격한 로마군단을 따라온 로마상인들은 지금의 런던 상거래 중심지인 시티일대를 로마상인들의 장터로 지정받아 그 지역의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의 기세는 오늘에도 전해진다. 세계 최대 국제장터인 뉴욕의 맨해튼은 영국군대가 네덜란드 군대를 물리치며 점령, 이전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만든 뉴 암스테르담이란 장터를 영국 상인들이 정주하면서 오늘의 뉴욕으로 부르고 있다.
‘항도’ 부산의 장터들은 1950년 한국전쟁과 불가분의 인연을 갖는다. 화제의 영화 ‘국제시장’이 묘사하듯이 남하하는 군대와 같이 내려온 팔도 상인들이 임시수도 부산을 삽시간에 전국의 장터로 만들었고, 지금도 우리 부산시민은 그 추억의 장터를 곁에 두고 산다.
모두가 원하지 않지만, 그러나 요즘 지구촌에는 다시 전쟁의 서늘함이 엄습한다. 하나의 시장으로, 공존의 지구로 바짝 가까워지던 국제사회는 이제 공공연한 대결과 보복과 대립의 사이로 냉기류가 흐른다. 당장 우리나라도 국내 정치 사안을 두고 국민이나 정파들이 극단적으로 분열하는 모습도 이전에는 못 보던 장면이다.
국가 대 국가의 긴장과 전쟁 상황은 인근 지역 무역과 금융에 아주 불가분의 관계를 보인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15세기 이후 근세까지 유럽의 무역과 금융 중심지가 된 것에는 그 지역 주변에서 큰 전쟁이 잦았고, 북해 항로가 자주 막힌 덕분도 크다. 18세기 이후에는 암스테르담이 전쟁 당사자가 되기보다 전쟁 주변에 있는 경우가 많아, 그들은 조선 금융 철강 해운 등의 교역과 투자나 금융거래에서 중개나 거간 지역으로 크게 성장했다.
부산의 미래를 그려보면 누가 뭐라 해도 국제무역, 국제물류, 국제금융, 국제해양 도시로 더 커야 한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볼 때, 부산 주변의 지정학적 정세는 대만 양안, 일본 남쪽 열도, 남중국해 일대와 인접한 중국과의 바다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과 긴박성을 팽팽하게 품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압박과 긴장이 높아지는 특정한 지역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점점 상대적인 도시 기반 안정과 물건과 서비스 지원을 담보하는 안전한 도시지역으로 주변국의 교역과 금융 등이 서서히 몰리면서 부지불식간에 허브역할을 다지게 마련이다.
고대로 가면 지중해의 델로스 동맹이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그것으로, 그 지역의 잦은 전쟁 중에서 인접 도시국가들이 선박 금융 상거래 등에서 단단한 동맹을 맺고, 그중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던 동맹 안보, 금융 교역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뒤의 부산항도 안전하고 원활한 물류와 생산기반을 가진 지정학적 유능성으로 당시에 그 역할이 남달랐었다.
부산의 도시적 역사성은 언제나 사람과 물건, 돈이 넘치고 풍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와 관광으로 사람을 모으는 일은 평화로운 시대에는 좋은 도시전략이다. 하지만, 지금 유럽을 중심으로 서방 선진국들이 인근 지역 전쟁상황에 대처하느라 점점 안보와 경제에서 하나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미 생활과 화폐에서 하나가 된 그들이 전쟁으로 더 공고히 결합하는 양상이다. 지금 미국이 유럽의 전쟁 비용을 덜 물려는 심사로 한 발 뒤에 있지만, 그들도 결국은 유럽과 같은 길에 서 있다.
부산을 둘러싼 지정학적인 국제관계는 한국 일본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점진적으로 지역 내 협력과 행동 단결과 실질적 결속이 강력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모두 중국 정세에 연관된 민감한 역내 지정학적 정세와 기류를 항상 경각심으로 의식하는 나라들이다. 그런 일이 눈앞의 급류가 아니더라도 부산은 장차 이 지역에서 안전한 국제도시로서 지정학적으로 인근의 교역과 금융의 구심력을 가질만한 내재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고 보니 2030년의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가 무산된 것이 참 아쉽다. 하지만, 그때의 시민 결기와 도시 열망으로 부산을 상시 세계박람회가 열리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결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도전해야 할 일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숨이 막히는 일련의 사건 사고 속에서 마냥 짓눌리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근간의 우리 국민의 심경이다. 이제 부산이 가장 먼저 털고 일어서 보자. 그 출발로 전국 국민을 ‘부산 봄나들이’에 초대하기로 해보자. 가격을 좀 알맞게 하고, 거리도 좀 밝게 꾸미고, 영업시간도 좀 더 늘리고 해서 올해는 여름 손님을 4월부터 좀 당겨서 받아 보자. 부산시민 모두 “어서 오이소”를 힘차게 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