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미국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은 깜짝 놀랄 만한 젊은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게 이인제라는 설이 파다했다. 실제로 이인제는 민선 1기 경기지사직을 던지고 대권에 도전했다. 이후 경기지사는 대통령으로 향하는 징검다리가 됐다. 현재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도 경기지사를 지냈다. 서울시장은 더하다. 고건 박원순 등 민선 서울시장 치고 대통령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김태호 김두관 홍준표 등이 거쳐간 경남지사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그 많은 시장·도지사 출신 대선 후보 중에서 성공한 케이스는 아직 이명박 전 대통령 한 사람 밖에 없다.
미국은 좀 다르다. 대통령직에 오른 45명 중 주지사를 거친 인물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20명이나 된다. 상원 의원이나 하원 의원 출신보다 많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8년간 파리 시장을 역임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권을 잡은 사람이다. 내각제 국가인 영국 역시 보리스 존슨, 리시 수낵 등 런던 시장에서 총리로 체급을 키운 인물이 적지 않다.
‘6·3 장미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에서 꿈틀거리는 잠룡은 어림잡아 20명 가깝다. 여기엔 현직 시장·도지사가 최소 8명은 된다. 국민의힘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김태흠 충남지사, 이장우 대전시장 등이 몸을 풀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김동연 경기지사가 이재명 일극체제에 도전장을 던졌다. 박형준 부산시장마저 나서면 7대 특별·광역시 단체장 중에선 울산과 광주를 제외하고 전원 출마하는 셈이 된다. 대부분 현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가할 예정이지만, 홍 시장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장직 사퇴 배수진을 쳤다.
광역지자체의 장은 대권 도전에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연간 수조 원에 달하는 예산 집행권에다 각종 인허가권까지, 권한은 막강하지만 중앙의 견제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인구 수백만 수천만 도시를 관할하면서 행정경험을 쌓고 인지도까지 높일 수 있다. 설사 경선에서 떨어지더라도 대선 주자급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차기 지방선거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도 누린다. 주민 입장에서 시장이나 도지사의 이런 야망이 나쁠 건 없다. 그러나 용꿈의 대전제는 본연의 업무 성과다. 제 일은 못하면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을 곱게 볼 시민이나 도민은 없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