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스페이스 원지(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열린 ‘문화경청’ 행사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부산시와 부산연구원이 주최한 ‘문화경청’은 시가 지역문화진흥법 3차 시행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시민 50명이 주제별로 나뉜 시민워킹그룹에 참여해 의견을 내놓으면 부산연구원이 취합해 계획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문화경청’의 또 다른 줄기인 현장 투어도 시작됐다. 문화예술 장르별 예술인을 만나 의견을 듣는 간담회로, 지난 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음악 분야 예술인과 만난 것을 시작으로 다음 달까지 8회에 걸쳐 진행된다. 시는 시민워킹그룹의 의견과 현장투어에서 나온 건의사항을 모아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계획을 세우고, 부산시장·예술계·시민이 함께 ‘문화 동행’을 선언하는 행사까지 열 계획이다(국제신문 지난달 24일 자 17면 보도).
시민이 참여한 시민워킹그룹 행사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꽤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어 귀를 기울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 상당수는 직간접적으로 문화예술을 접한 이들이었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예술인과 기획자도 상당수 포함됐고, 생활문화동아리에 참여했거나 지역 문화원에서 활동한 이들도 꽤 많았다. 처음에는 수줍은 듯했지만 그들은 이내 열정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생각했던 부분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장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답답했던 부분과 이런점을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 내는 이들을 보며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부산 시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문화 인프라 확대로 예술을 향유하는 이가 늘었고,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졌기에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바람도 예전보다 구체적으로 변했다. 시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이를 듣고 움직여야 할 대상은 여전히 닫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부산의 문화예술 정책을 이끄는 시는 여전히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관 주도의 정책을 만들고 실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경청’에 시민 자격으로 나온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 것은 그동안 이런 요구를 할 대상도, 장소도 찾지 못했던 데 대한 하소연이 아니었을까.
2016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관 주도의 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상쇄하기 위해 ‘문화진담’을 열고 문화예술 현장을 찾아 시민과 예술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문화예술 정책을 펼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이런 형식적인 자리마저 잦아들었고, 최근 퐁피두 미술관 부산분관 유치 과정에서 시의 문화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다시 ‘문화경청’이란 이름으로 시민·예술인과 소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귀 기울여 듣겠다는 ‘경청’이란 단어가 얼마나 실현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이전보다 진취적인 결과물이 나오길 바란다.
무엇보다 시가 진정으로 지역 시민·예술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면서 구속력을 가진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16개 구·군부터 각 공연장, 문화 관련 공공기관, 문화예술 단체, 예술인, 시민, 문화체육관광부 등 민관을 아우르는 거버넌스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발굴해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형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부산연구원이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계획에 거버넌스 구축 내용을 반영할 계획인 만큼 얼마나 구체적인 실행안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문화는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서부산에 살아서’ ‘공연 볼 돈이 없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문화를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시의 문화정책이 시민에게 골고루 전파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진정한 글로벌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부산 시민이 문화를 누리며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시가 진정으로 ‘문화경청’을 해주길 바란다.
김현주 문화라이프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