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가 강행되자 미국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미 주식시장(S&P500 기준)은 4월 11일 하루 만에 숨 돌릴 틈도 없이 7.1%가 빠졌고, 달러 가치는 3%, 그리고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10년물 기준) 가격도 9.5%가 떨어졌다. 미국을 대표하는 모든 금융자산이 폭락한 것이다. 이에 놀란 트럼프는 보편관세 10%를 제외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는 조치를 급히 취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공포에 빠졌다. 하지만, 관세 혼란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단서도 나타났다.
트럼프의 태도 변화에서 첫 번째 단서를 읽을 수 있다. 그는 90일 간의 상호관세 유예 이유를 사람들이 불안해해서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두 부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지지층인 미국 서민과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해리스를 버리고 트럼프를 선택한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이다. 이들은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트럼프는 이들에게 고물가와 고금리라는 폭탄을 안겨준 셈이 되었다. 두 번째 부류는 미국의 중산층이다. 이들은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를 통해 은퇴 준비를 하거나 은퇴 생활을 위해 투자하는 계층이다. 이들은 자산의 8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번 주식폭락으로 미 중상층 역시 큰 손실을 입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이들이 주식시장에서 손실을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미 국채 금리와 주가가 동시에 폭락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추세가 그대로 굳어진다면 2026년 11월에 있을 상하원 선거는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이 생각에 이르자 트럼프의 관세에 대한 강경 태도가 누그러졌다.
트럼프 참모들의 서열 재편이 두 번째 단서다. 트럼프를 움직이는 대표 참모는 경제고문 피터 나바로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다. 나바로는 관세정책에 대한 강경파이고 베센트는 온건파다. 이번 파동으로 강경파는 정치적으로 심한 손상을 입었다. 그들의 주장대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공격을 퍼부은 결과 오히려 미국경제가 결딴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겁먹은 트럼프가 베센트 장관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온건파가 득세하고 있다.
관세 공격에 거세게 도전하는 의외의 국가 등장이 세 번째 단서다. 상호관세가 발표되자마자 대규모 미 국채 투매가 있었다. 미 국채는 미국경제를 받들고 있는 거대한 기둥이자 재정적자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세계 모든 나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미 국채만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관세 파동으로 이 신화가 깨졌다. 이 신화를 앞장서 깬 국가가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그동안 이 나라는 미국에 매우 순종적이었다. 미국이 요청하면 군말 없이 대량으로 미 국채를 사주었다. 그랬던 일본 금융기관이 미 국채 투매 선봉에 섰다는 사실을 트럼프는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우방 국가인 캐나다와 유럽이 미국에 반기를 드는 상황에서 일본도 반기를 든 양상이 되었다. 3월 30일 서울에서 있었던 한·중·일 경제통상장관 회의도 미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미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를 비판하면서 한일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트럼프 역시 무차별 관세 공격이 지속된다면 최우방국들조차 정말로 미국과 멀어질 수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부과에 대한 유연성이 네 번째 단서다. 미 정부는 상호관세 유예조치와 대중국 상호관세를 확정한 다음 날 미 관세국경보호국(CBP)을 통해 컴퓨터 및 데이터 처리 장비, 컴퓨터 부품(그래픽처리장치 관련 부품 등), 반도체 제조 장비, 스마트폰 및 통신장비, 반도체 소자 및 집적 회로 등 20개 항목을 상호관세 예외 품목으로 했다. 향후에는 품목관세로 전환하기로 했다. 애플 등 미국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찌 됐든, 트럼프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관세문제를 처리할 가능성이 확인됐다. 트럼프 본인도 자신은 유연한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다만, 중국은 이들 품목에도 기존 20% 관세는 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위의 단서들만 가지고 트럼프가 관세정책을 종료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서슬퍼렇던 관세 강공의 끝은 보인다. 그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이 90일 유예기간이다. 이 기간 중 많은 나라가 미국과 협상에 나서게 된다. 그 결과를 모아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선언하며 관세문제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이번 파동으로 미국은 많은 친구를 잃었다. 국제적 신뢰 역시 무너졌다.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관세 파동을 조속히 끝내야 한다. 전선이 좁아져야 중국만을 오롯이 밀어붙일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러우 전쟁 휴전협상과 이란과의 핵 군축 협상도 마무리해야 한다. 품이 많이 드는 이런 일들을 처리하려면 관세 혼란에서 빨리 빠져나올수록 유리하다.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을 번갈아 가며 선택하는 경합 주 공화당 의원들은 초조하다.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들 모든 주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