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후 도읍을 옮기고 싶었다. 개경이 길지(吉地)이지만 고려 수도에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초기 후보지로 계룡산과 한양이 거론됐다. 태조는 개경에서 먼 계룡산에 끌려 공사를 명했다. 하지만 경기도 관찰사였던 하륜이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도읍은 마땅히 나라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남쪽에 치우친다”와 “근처에 큰 강이 없어 교통이 불편하다”는 게 이유였다. 정도전과 남은도 이에 동조하면서 태조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후보지는 한양(경복궁)과 무악(신촌 연희동)이었다. 두 곳을 두고 조정 대신 간 의견이 갈렸다. 태조는 직접 둘러보고 의견을 모은 끝에 한양을 낙점했다.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1394년 한양으로 천도했다. 그러나 ‘왕자의 난’이 일어나 피바람이 불자 정종은 개경으로 환도한다. 여우가 궁궐에 들어오고 궁이 불에 타면서 다시 천도론이 불었다. 재차 무악이 거론되면서 태종이 두 곳을 둘러봤다. 한양이 좋다던 지관들이 무악을 선호하자 태종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점(동전 던지기)을 쳤다. 1405년 한양으로 천도한다. 이후 서울은 620년간 수도다.
6·3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세종 천도론이 일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가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집무실이 완성될 때까지는 청와대에 머물 계획을 밝혔다. 국회와 대통령실이 이전한다는 것은 수도를 옮긴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의 세종 완전 이전을 공언했다. 대통령실과 관련해선 세종에 제2집무실을 두겠다고 밝혀 이 후보 안과 다르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세종으로 수도를 옮기려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좌초됐다. 수도 이전은 헌법 개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등장한 개념이 관습헌법이다. 법에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헌법처럼 굳어진 개념이라는 법리다.
대통령실과 국회의사당 이전은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가능하다. 국회의사당 이전은 양당이 동의하니 가능하겠지만 대통령실 완전 이전은 쉽지 않다. 국회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워도 국민투표를 통과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점에서 수도 이전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구체적 로드맵 없이 진행되는 논의는 선거를 의식한 ‘표심 잡기’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현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