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필자는 서울 덕수궁 야간 도슨트 투어를 하게 되었다. 예전 덕수궁에서 공연했던 경험도 있었지만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는 밤의 석조전은 고즈넉한 궁궐의 정취 속에서 이국적인 건축물이 밤하늘 아래 더욱 빛을 발하며, 역사적인 공간에 물든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클래식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것은 ‘밤의 석조전’이라는 대한제국의 황실 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민 대상의 야간 행사였다. 고종 황제가 즐겼던 가배를 마시고, 그 공간에서 클래식 연주를 감상하는 동안, 건축이라는 ‘하드웨어’와, 황실의 삶과 문화라는 ‘소프트웨어’가 정교하게 결합 되어 하나의 시간적 풍경을 빚어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각적 여행을 경험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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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석조전 야간 풍경. |
덕수궁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서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고종 황제가 외국 사절을 맞이하며 자주적 근대국가로서 제국의 위상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한 공간이자 그 시대의 변화와 문화적 열망이 깊이 담겨있는 공간이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의 근대화와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서양식 군악대를 창설하고 서양 음악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판소리 명창인 김창환에게 의관 직을 하사할 정도로 전통 음악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즐겼던 음악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시기에, 두 세계를 아우르며 다채로운 음악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문화적 맥락을 현재의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경험하는 주체가 된다. 이와 같은 건축물과 예술의 상관관계는 일제강점기 동안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세기 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개관되면서, 극장이라는 대중적인 공연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등장했다.
이후 많은 극장이 설립되면서 공연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새로운 문화가 확산되었고, 창극이라는 장르의 등장으로 일제강점기 극장식 공연장이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연의 플랫폼이 완전히 바뀌었다. 덕수궁 석조전은 바로 이 시기 새로운 전환점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건축과 예술이 공간적, 문화적 변화를 동시에 함으로써 사람들이 공간에 따라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최근 부산에서 다음 달 20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는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은 바로 이와 같은 건축과 예술의 만남을 새롭게 보여주는 사례다. 정식 개관을 앞두고, 이미 이달 열릴 시범 공연 티켓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부산 시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00석 규모의 부산콘서트홀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부산의 정체성을 담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부산의 문화 예술이 세계와 소통하며 도시 부산의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으면 한다.
부산콘서트홀은 밤의 석조전의 사례처럼 건축물과 예술이 교차하며 공간의 의미를 확장하여 도시 부산의 정체성을 함께 경험하는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명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