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세계 컴퓨터 업계를 좌지우지한 인물이 33년간 몸담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창업주인 그는 “큰 변화를 놓칠 때 위험한 순간을 맞는다”란 은퇴사를 남겼다.
13년간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빌 게이츠 얘기다. 그는 이제 세계 최고의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100여 년 전 세계 최고 갑부 록펠러의 길을 따라 걷는다. 평등 세상을 향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세계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사회봉사를 기업의 의무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5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학을 다니던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느라 학업을 포기했다. MS-dos Window 등을 내놓으며 MS를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익스플로러’의 악의적인 끼워팔기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해 ‘약탈적 독점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은퇴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질병과 빈곤을 퇴치하고,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백신 개발에 투자하고 임신부와 어린이 사망률을 낮추는 데 힘썼다. 빈곤 해결에도 앞장섰다.
2000년은 그가 공식 은퇴하기 전 경영에서 물러난 해다. 같은 해 설립된 게이츠멀린다재단은 25년간 1000억 달러(약 140조 원)가 넘는 돈을 기부했다. 멀린다는 전처 이름이다. 사후 20년까지 운영할 목표로 재단을 꾸려왔다. 하지만 지난 8일(현지시간) 지금부터 20년만(2045년까지) 재단을 운영한 뒤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1%는 자녀 상속분이다. 현재 그의 재산은 1080억 달러(약 152조 원)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세계에서 다섯 번째 부자다.
빌 게이츠가 기부를 서두른 것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원조가 끊겨 시급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가 미국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사실상 해체 수준으로 삭감했다. 아프리카 아동에게 전달해야 할 백신이 공급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세계 최고 부자가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고 머스크를 비난했다. 트럼프 정부는 비영리 공익재단의 비과세 혜택을 없애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이츠는 기부 계획을 밝히면서 재단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제가 죽으면 사람들이 ‘부자로 죽었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도록 하겠다.” 악착같이 번 돈으로 끈덕지게 선행을 쌓고 있다.
최현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