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모임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패거리가 망쳐놓은 문화들이 있다고.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관계들이 어느새 배타적인 무리로 변해 영화제나 지역 영화 문화를 망치고, 생태계를 병들게 한다고 했다. 곧이어 누군가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패거리 문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다고. 이 대화는 분명 지금의 지역 영화계를 돌아보는 진지한 피드백이었다. 그러나 나는 패거리가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남았을까가 궁금해졌다.

얼마 전 독립영화 배급사 씨네소파는 8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익힌 것 중 하나는, 관계 맺기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돌이켜보면 씨네소파를 운영하면서 산업적 측면에서 외부와 연결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지역에 배급사가 거의 없었고,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우리의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씨네소파는 영화 비전공자들이 우연히 시작한 조직이었다. 특정 학교나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영화계 내부에 뚜렷한 기반도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네트워크 바깥에서, 제도 바깥에서, 무언가를 상상해야 했다. 배급사로서 카페 ‘인디샷’을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런 배경과 연결된다.

지난 4월, 나는 ‘2025 부산영화정책포럼’의 첫 행사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부산영화인연대가 주최·주관하고, 부산국제단편영화제와 동의대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가 후원한 행사로, 부산시·부산영상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지역의 감독, 제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각자의 아쉬움을 공유하고, 침체된 영화시장과 지역 영화계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논의됐다. 누군가는 영화 창작이 기획 실험 실패 보완을 포함하는 복잡한 과정임에도 현행 정책이 여전히 결과 중심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했고, 누군가는 지역 내 교류의 장조차 형식화된 구조 속에서 점점 외면받고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배급 현장에서는 목표치에 비해 지원 구조가 빈약해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는 현실적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 고충의 발화들이 이어지는 순간, 나는 오히려 이것이 모두 정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너무 다른 자리에서, 너무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의 말은 정답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겐 틀린 말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경험의 나열을 넘어 데이터를 만들고 각자의 조각들로 하나의 모자이크를 그려내는 일이다. 이런 작업은 결코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다시 연결되고,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할 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씨네소파의 오랜 슬로건은 ‘작은 물결이 큰 파도를 만든다’이다. 하지만 작은 물결이 큰 파도를 이루기 위해선 그 작은 물결들이 많아야 하고, 같은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어야 한다. 단지 몇 명의 작고 성실한 의지만으로는 산업과 구조의 파도를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씨네소파이든, 다른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패거리라 부르든, 공동체라 부르든, 연대라 부르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향 없이 엉켜 있는 혼란한 전장이 아니라, 공통된 목표와 원칙을 향한 연결이다.

부산은 영화 도시라는 수식어에 비해, 부산영화 생태계는 여전히 좁고 불안정하다. 지원규모를 늘리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던 지원기관, 제작비 주장하는 제작사나 문화다양성을 창작자나 상영의 물꼬를 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영자나 배급자, 그리고 관객까지,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산업이자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 아래 놓여 있다. ‘2025 부산영화정책포럼’의 첫 번째 시간은 단 하나의 큰 의미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 연결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

패거리 공동체 연대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듯하다. 우리는 ‘패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공동체’도 ‘연대’도 포기해버렸던 것은 아닐까? 이 글로 말미암아 여기까지 버텨온 이들이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면서, 다시 손 내밀어 보는 상상을 해본다.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