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저널리즘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 김인정은 아무리 더 나은 사회를 위한다는 당위가 있다고 해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화면에 비추고 축약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고통은 어떻게 재현되어야 하는가? 그 수위와 디테일은 어디까지 공개되어도 괜찮은가? 그 모든 과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책 곳곳에 남겨진 질문은 기자로서의 고민과 경험을 통과하며 ‘고통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재현의 윤리가 비단 기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나 영화감독, 다양한 소재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방송인 등 타인의 삶과 연관된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도덕적 의무에 가깝다. 그렇기에 “재현의 범위와 효능의 저울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약자를 위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하다”란 저자의 말은 타인의 고통을 다루고자 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모범적인 기준이 된다.

하지만 어떤 재현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 자체가 ‘사실’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상황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이 재현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고통과 연관된 타인의 삶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실은 구경거리로 전락하며,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고통만을 재생산하는 폭력이 된다.

지난 27일 대선후보 3차 TV 토론에서 나온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폭력적이었다. 그는 이재명 후보와의 질의 과정에서 “올해 4월 학교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통화로 했던 말”이라며 혐오 표현을 입에 담았다. 이재명 후보의 과거 욕설 논란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냉정하게 이것 누가 만든 말인가?”라며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준석 후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권영국 후보에게 질의하며 여성의 신체와 관련된 혐오 표현을 한 번 더 노골적으로 언급했다. 이번엔 이재명 후보의 아들 관련 논란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발언은 생방송 중 그대로 노출되었고, 각 언론사는 물론 여러 정치사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발언의 수위보다 나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이준석 후보의 태도였다. 앞선 두 발언 모두 학교폭력 대책 방안이나 여성 정책 논의와 무관한, 오로지 특정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그 맥락 어디에도 피해자는 없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 국민 앞에서 사건 시기와 피해 사실이 특정된 학교폭력 피해자나,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되었을 1차 피해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될 뿐이었다.

시민단체는 즉각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언어 성폭력’으로 규정했다. 언론에서도 비판이 계속되자 그는 토론 이후 “불편한 국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면서도 “민주·진보 진영의 기준을 물었을 뿐”이라며 목적은 정당했다는 반쪽짜리 사과를 했다. 하지만 와중에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재현의 범위와 효능을 가늠했을 저울 위에는 ‘약자를 위한다는 전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만들어낼 정치가 진심으로 걱정된다.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사실은 혐오의 언어만을 재생산한다. 기준 없는 재현 속에서 자신들의 고통을 되새김질하고 있을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정치는 그런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나. 이준석 후보는 대선 이후에도 이어질 그들의 삶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논란이 된 발언은 며칠 사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자신이 재현한 고통이 반복되어 학교나 사회,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시작할 때도 ‘인용’을 했을 뿐이니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건가. 그렇다면 책임은 이번에도 피해자들의 몫인가. 그의 언어로, 그에게 묻고 싶다. “냉정하게 이것 누가 만든 말인가?” 우리가 이번 대선을 깊은 고민과 경험으로 통과했으면 한다. 고통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공동체의 책임을 다시금 상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