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미국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한국을 향해 일종의 경고를 날렸다.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에서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한다며, 미국은 공산 중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을 향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태도를 경고했다. 미국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했을까? 미국에게 한국은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한반도 역사 전체를 먼저 개관해보자.
한반도 역사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주변 열강의 먹잇감으로 딱 좋았기 때문이다. 조선조 일본에 의한 임진왜란, 신흥 제국 청나라에 의한 병자호란, 일본제국에 의해 조선이 사라지던 경술국치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의 등장으로 한반도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들 사건의 공통배경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이 있다. 전국시대를 평정한 통일 일본이 한반도를 노렸다. 조선은 오랜 기간 일본의 노략질 대상이 될 만큼 탐나는 곳이었다. 청나라는 중국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명의 충실한 제후국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필요했다. 제국화된 일본은 조선말 일본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분산할 목적으로 한반도를 재침략했다. 2차 세계 대전을 극복한 소련은 태평양으로 자유롭게 진출할 땅을 가지고 싶었다.
현재 한반도 상황은 어떠할까? 지금도 한반도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강력한 영향권에 놓여 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이들 네 나라, 특히 미국은 한국을 확실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의 남진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쟁에 개입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 때문일까?
미국은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과거 미국은 대서양 중심의 전략에만 몰두했다. 미국과 유럽만 연결하면 세상의 패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최근 미국의 기본 전략은 인도-태평양전략(인·태전략)이다. 인도 호주 한국 일본 미국을 연결해 인도양과 태평양에서의 패권을 쟁취하겠다는 구상이다. 2011년, 미 힐러리 국무장관이 ‘아시아로의 전환(Pivot to Asia)’이라는 전략을 들고나온 것이 시초다. 이것의 확장이 트럼프 1기 때 제시된 인·태전략이다. 핵심은 중국을 인도양과 태평양 양쪽에서 압박하는 것이다. 트럼프 2기의 미국은 이 전략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이것의 핵심 요충지가 한국이다.
한편, 미국에게 한국의 중요성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장소였다. 지금은 대만이 그런 장소로 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주둔 미군의 역할을 대만 방어로까지 확장하려 한다. 중국이 정말 대만을 점령하고자 한다면 중국은 한국의 미군기지를 타격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한국은 중·대만 전쟁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하지만, 중국 홀로 군사력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 한국 일본이 가세하는 전쟁을 치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국은 서해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무시하고 도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뜻에 동조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동아시아지역의 힘의 균형자로서의 지정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또 다른 가치는 경제적인 것이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난리다. 이 와중에 미국이 한국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의 조선업이 미국이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을 깨달았다. 세계 조선업을 장악한 중국은 전함을 벽돌 찍듯 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역량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돕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민감한 무기정보를 담고 있는 해군함정 유지보수사업(MRO)을 개방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이 유용한 국가임을 알았다. 원자력 산업이 예다. 미국은 설계기술 이외 원자력 발전소를 시공할 능력이 없다. 이것을 완벽하게 도와줄 나라는 한국뿐이다. 여기에 첨단 메모리반도체, 전기자동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수인 이차전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바이오시밀러 제약, 태양광 모듈 등 한국은 중국의 글로벌 경제패권을 저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라가 중국의 편에 서는 것은 미국에게 심히 불편한 일이다. 이런 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발언이다. 그렇다고 이를 한국을 압박하는 용도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한국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해야 한다.
한국은 주변 열강에 의해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한국은 어떤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특별한 가치를 가졌다. 이 가치를 잘만 활용한다면 한국은 50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랄 만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국민의 현명한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