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국무조정실은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광복 80년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어떤 나라에 속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선진국 27.8%, 중상위권국 39.3%, 중진국 22.6%라는 반응을 보였다. 설문대상자의 61.9%가 한국은 선진국이 아닌 중진국권 나라 정도로 인식했다. 이는 국제적 평가와 매우 동떨어져 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분류했다. UNCTAD 설립 이래 최초의 일이다. 이전에도 한국은 유사 선진국 대우를 받았다. 1996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세계은행은 1995년부터 한국을 고소득국가로 분류했다. 또 한국은 선진 강대국인 G7 정상회의에 초청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한국은 이미 잘사는 나라, 고도경제를 가진 나라, 문화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인들만 한국을 선진국으로 불리기를 꺼리고 있다. 왜 그럴까? 네 가지 이유로 요약해볼 수 있다.
겸손함이 한 이유다. 자신을 낮추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한국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겸손은 해외 대학에 나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한국 학생들은 미국 대학에서 4.5만 점 중 4.3이나 4.4의 학점을 맞아도 그저 그런 성적을 받았다고 자신을 낮춘다. 외국 학생들이 보면 뒤로 나자빠질 성적이다. 이런 것을 보며 외국인들은 하나 같이 한국인들이 너무 겸손하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 부족이 원인이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한국은 어떤 나라냐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한 적이 있다. 대다수 학생은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답이 중진국이었다. 다시 질문했다. 영국은 선진국입니까? 학생들은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또 질문했다. 영국이 한국보다 자동차 배 반도체 철강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원전을 잘 만듭니까? 학생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한국은 중진국이고 영국은 선진국인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했다. 학생들의 답은 이러했다. 오래 전부터 영국은 산업혁명의 나라로 선진국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한국은 많은 산업에서 영국을 앞섰다. 이런 정보가 입력되어 있지 않으니 영국은 영원한 선진국, 한국은 영국보다 처진 나라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국무조정실 결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비교방법이 또 다른 이유다.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논하려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 여부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핵심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선진국을 인식하는 방법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요즘 살기 너무 힘들어. IMF 때도 이러지는 않았어. 이런 나라가 무슨 선진국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면 현재의 삶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내 삶은 그렇지 않다는 주관적 인식이 한국을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선진국을 정의하는 기준도 한 원인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선진국은 이상적 국가다. 모든 국민이 잘 살고, 민주적 혜택을 누리며,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사실 이런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기준으로 한국을 평가한다. 당연히, 많은 것이 부족하다 보니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한 기준은 관대하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강대한 과학기술 선진국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초라하다. 독일은 세계에서 최상위급 자동차를 만드는 선진국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자동차 기술 수준은 낮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한국이 주요 첨단 제품 제조역량에서 미국을 훨씬 앞선다는 사실이나, 한국 자동차가 유럽 자동차 품평회에서 줄곧 1등을 하고 있다는 뉴스는 못 들은 척한다. 벤츠와 BMW가 상을 받아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무엇이라고 인식하든 자신을 낮추려고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의지의 표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우리가 경쟁의 맨 앞에 나선 선진국임을 확실히 인식해야 선진국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스타트업 기업이 아무리 창의적인 생각을 해도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정말 맥 빠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일론 머스크와 같은 창업가가 등장해 위성으로 통신하는 스페이스 X 사업을 하고 화성에 가기 위해 재활용 로켓 사업을 하겠다는 사업 비전은 미친 발상이다. 자꾸 다른 나라는 어떠하냐는 질문만 받으니 창의적 인재들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설명하느라 애쓰고 시간 낭비하느니 다른 나라에서 창업하겠다는 것이다. 될성싶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본사를 아예 해외에 두는 한 이유다.
심리적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자. 그래야 갈 길이 보이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이 생긴다. 겸손은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자학이다. 자학이 자신에게만 머무르면 아무 문제 없다. 다른 사람들을 같이 끌어내리는 것이 문제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은 의심할 여지 없는 선진국이다. 그것도 다른 나라들이 너무나도 부러워하는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