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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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현장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이날 법사위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특검 출석 요구 당시 옷을 벗고 버티는 과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폐쇄회로(CC)TV 등 영상기록 열람을 통해 확인했다. 이날도 여야 입장이 갈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해 윤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거부를 확인했다고 밝힌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불참했다. 연합뉴스 |
신영복(1941~2016) 선생이 1985년 8월 28일 쓴 ‘여름 징역살이’의 일부다.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낸 그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 글은 그가 모진 세월을 견디며 닦은 시대의 거울이다. ‘검열필’ 도장이 찍힌 채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편지로 세상과 소통한 230여 편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시대의 거울엔 개인의 사색이, 개인의 사색을 바탕으로 한 사회의 성숙이 투영된다. 그래서 시대의 거울은 시대의 양심으로 치환된다. 신 선생의 고초와 분투는 중요한 단면이다. 많은 신영복이 있었고, 그에 조응한 수많은 국민이 있었다. 거울은 계속 닦아야 하고, 양심은 계속 벼려야 한다. ‘벼린 도끼가 이 빠진다’는 말이 왜 나왔겠나. 반헌법적 ‘12·3 비상계엄’ 사태가 주는 역설적인 교훈이다.
내란·김건희·해병대원 3대 특검이 수사 고삐를 죄고 있다. 핵심인 윤석열 김건희 전 대통령 부부를 겨낭한 단죄의 시간이다. 두 사람 태도는 반성과 사죄라는 기대와 영 딴판이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결백을 다툴 여지가 남았다고는 하나 전직 대통령 신분이다. 윤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형량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다. 김 여사 혐의는 ‘금 송아지 매관매직’ 등 까도 까도 끝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에게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란 말을 듣고자 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인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 구하기처럼 되지도 않을 일을 바란다는 연목구어의 속뜻이 깊다. 맹자는 힘으로 천하를 얻으려는 전국시대 제나라 왕에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나라와 백성을 위태롭게 하는 욕심이라고 강조했다. 목적도 방법도 글렀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정치를 하려면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하라는 취지다. ‘맹자(孟子)’ 전편을 통틀어 가장 긴 1313자의 양혜왕 상편 7장 요지다. ‘맹자’에서 처음 나온 이 사자성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까닭을 비상계엄과 이를 극복하려는 국민의 의지, 탄핵과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겪었다.
여름 옥살이는 어떤 사람이라도 신산스럽겠지만 서울구치소와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된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 때문에 천양지차다. 이른바 속옷 버티기와 달빛 입장문은 그 간극을 극대화하는 변곡점이다.
1일 더불어민주당은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 전 대통령이 두 차례 속옷 차림으로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가 특검 소환을 거부하는 장면이 구치소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국격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정도다. 이를 두고 망신주기라면 구치소에 드러눕더라도 억지로 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검찰총장 출신의 버티기 전략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9일 구속기소된 김 여사 태도 역시 어금버금이다. 김 여사는 역대 영부인 중 첫 공개 소환, 첫 구속기소라는 헌정 최초 불명예를 쌓고 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이 머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몰락을 자초한 배경이라고 지목된 김 여사는 “가장 어두운 밤에 달빛이 밝게 빛나듯이 저 역시 저의 진실과 마음을 바라보며 이 시간을 견디겠다”고 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호수 위에 비친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윤 전 대통령과 닮았다.
연목구어가 나왔으니 물고기와 곰 발바닥에 빗댄 맹자 이야기를 더한다. “물고기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곰 발바닥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둘을 한꺼번에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가질 것이다. 삶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올바름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둘을 한꺼번에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올바름을 가질 것이다.”(‘맹자’ 고자편 상)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당시 국무위원, 지금도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신영복 선생은 20년 감옥 생활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힘이 그런 노력에서 나온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유효한 이유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