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무대왕면의 함월산(含月山) 자락에 바위 동굴 사찰인 골굴사(骨窟寺)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1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골굴사는 인도를 본떠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동굴법당이다. 골굴사의 동굴법당은 화산이 분출할 때 나온 화산재가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암석 절벽과 바위산을 뚫어 조성했다. 동굴법당은 자연 동굴을 알맞게 뚫어 조성한 것과 폐광된 동굴을 활용한 것, 그리고 바위와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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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의 마지막 숨길이 남아있는 법당굴. |
필자가 전국에 산재한 동굴법당을 감정한 결과 자연 동굴을 활용한 법당이 생기가 충만한 상급이라면, 폐광된 동굴과 바위와 돌을 쌓아 만든 법당은 중급에 속했다. 따라서 자연동굴법당이 나머지 두 동굴법당에 비해 기도 효험이 더 뛰어난 곳임을 확신한다. 골굴사가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원효대사(617~686년)가 열반한 혈사(穴寺·원효대사가 거처하던 굴 안의 절)인 ‘법당굴’이 있는 사찰이며, 한국의 소림사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한국 승가 무술인 선무도의 총본산이기 때문이다. 골굴사의 주산(뒷산)인 함월산은 ‘달을 머금은 자비와 달을 품는 너그러움을 지닌 산’이라는 뜻이며, 달은 석가모니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따라서 함월산의 달은 곧 부처를 의미하고, 함월산은 부처를 품고 있는 산이므로 함월산의 정기를 받은 골굴사 또한 생기가 충만한 곳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골굴사는 수행과 소원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영험한 사찰로 널리 알려져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원효대사의 열반처를 비롯해 자연 동굴을 다듬어 조성한 12개의 동굴법당은 함월산의 석맥(石脈·정기가 흐르는 줄기 모양의 돌)이 뻗어 내려와 자리 잡은 터에 있고, 좌청룡, 우백호, 안산이 주변에 포진해 있어 세찬 바람이 없는 생기 가득한 곳이다. 일주문과 사찰 내 도로는 수구(水口)라 하는데, 수구가 너무 넓거나 엉성하게 열려 있으면 좋은 기운이 새어 나가게 된다. 조선의 실학자인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수구는 작은 배 한 척이 드나들 정도로 좁아야 한다”고 하면서 수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골굴사는 연못과 가로수, 사찰 건물이 문과 통로를 좁히는 ‘수구막이’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어 사찰 내에 항상 생기가 머물러 있다. 사찰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자연동굴법당은 12개의 동굴과 함께 동굴의 가장 윗부분에 있는 엷은 미소를 띤 자애로운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 내려다보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원효대사가 열반한 굴(혈사)로 알려진 법당굴은 기림사 사적기에 ‘병자가 머물며 기도하면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신비한 기도처로 기록되어 있다. 법당굴의 좌측과 우측은 바위가 좌청룡과 우백호 역할을 하며 차가운 계곡풍과 주변의 살기(殺氣)를 퇴치하고 있다. 법당굴 내부에는 놀라울 정도로 생기 있고 빛이 나는 기운이 가득 차 있다. 법당굴은 골굴사에서 기도 효험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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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의 조화를 이룬 산신당 여궁과 남근바위는 생기를 발산하는 산실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12개의 굴이 모두 생기를 발산하지는 않는다. 함월산의 정기를 품은 석맥이 내려와 안착한 곳은 분명하지만 12개의 굴 중에서 원효대사 열반굴과 산신굴, 칠성단의 기운이 순차적으로 좋으며, 나머지 굴들은 중상급 또는 중급에 속한다. 마애여래좌상이 자리한 곳에서는 생기가 솟구치진 않지만 거기서 바라다보이는 조산(안산 뒤의 산들)의 훌륭한 형체를 볼 때, 골굴사는 귀인을 많이 배출하는 사찰이 될 것으로 본다. 골굴사를 방문한 사람들은 12개의 동굴을 둘러보되, 가장 생기를 내뿜는 원효대사의 마지막 혼이 깃든 법당굴에 들어가서는 품어온 염원이나 소망을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