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는 신속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발생이 지난달 26일이고, 공식 사과 발표는 이틀 후인 28일이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 사과가 나오기까지 13일, 이태원 참사는 6일이 걸렸다. 배터리 불씨 때문에 국가 전산망이 멈추고 이것이 국민 생활 전반에 끼친 피해와 불편을 감안하면 당연한 처신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 발언이 단순히 사과에 그치지 않았던 게 문제다.
언론학 위기관리 지침은 조직의 수장이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시도하지 말고 즉각적인 사실 인정과 사과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관건은 타이밍과 메시지 내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사건에서 뒤늦게 미적지근한 사과로 오히려 국민 화를 돋궜다. 타이밍도 내용도 나빴던 것이다. 반면 이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타이밍이 아닌 내용의 문제다. 이 대통령은 “2년이 지나도록 핵심 국가 전산망 보호를 게을리 해 막심한 장애를 초래한 건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 전산망 마비가 이전 정부 탓이라는 함의를 깔았다. “윤석열 정권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더 노골적이다.
민주화 이후 가장 사건사고가 많았던 게 김영삼 정부다. 취임 첫해 서해 훼리호가 침몰하고, 이듬해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다음해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 논리를 적용하면 성수대교 붕괴는 공사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은 박정희 정부 책임이고, 삼풍백화점 붕괴는 노태우 정부 책임이라는 말이 된다. 대형 사고 때마다 희생양을 찾으려 현재가 아닌 과거에 손가락질 하는 위정자를 국민은 구차하게 여긴다.
“위기가 닥치면 후임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세 개의 봉투를 준비하라”는 유명한 경영인들 사이의 이야기다. 첫 번째 봉투에 적힌 말이 ‘전임자를 비난하라’, 두 번째는 ‘조직을 바꿔라’, 세 번째는 ‘새로운 봉투 세 개를 준비하라’이다. 어떤 정권을 막론하고 전임 잘못으로 돌리는 건 관례처럼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 드라이브에도 오히려 서민 일자리가 감소했을 때, 윤석열 정부에서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파행됐을 때도 모두 전임자가 비난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남 탓’은 어쩐지 더 뜨악하다. 국회 거대 의석을 무기로 역대 어떤 야당보다 집요하게 행정부 발목을 잡았던 정당이 창출해낸 정권이어서다. 위기관리의 기본은 남 탓도, 국면 전환도, 회피도 아닌 ‘내 탓’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