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연다. 이날 관세협상이 타결된다면 경제 불확실성이 걷히는 효과가 있겠으나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말로 APEC 이후를 염두에 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타결할) 준비가 된다면, 나는 준비됐다”며 마지막까지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양국 장관은 최근까지 다양한 협의채널을 가동해 조율했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정상회담을 가진다. 사진은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이재명 대통령 모습.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예고한 대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최대 쟁점은 현금투자 비중과 투자기간이다. 미국은 현금투자 비중을 낮추는 데는 동의했으나 요구액은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미국은 매년 250억 달러씩 8년간 총 20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투자 패키지 중 20% 이상은 현금투자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단기간 대량의 외화가 빠져나가면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는 만큼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를 지렛대로 미 정부를 끝까지 설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외교적 치적 쌓기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선 안 된다. 미국 언론조차 관세협상과 관련해 “동맹국에 대한 비현실적 요구” “마피아식 갈취”라며 비판하고 있다. 관세협상은 수출과 외환시장, 투자와 고용 등 우리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중대 사안이다. 통상여건 악화로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어 신속한 타결이 시급하다. 하지만 APEC에 쫓겨 졸속으로 마무리해선 안 될 일이다. 이 대통령은 “국익에 반하는 합의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원칙을 지키야 한다. 북핵 문제와 한미 안보 동맹 강화도 양국 간 주요 현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7일 도쿄행 전용기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동 관련 질문에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꽤 큰 사안”이라고 밝힌 점은 우려스럽다. 그는 지난 24일에는 북핵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김 위원장이 전제조건으로 내건 북핵 폐기 요구 철회와 대북 제재 해제에 호응하는 듯한 모양새다. 북미 깜짝 회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미 정상의 만남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한반도 현안에서 우리 역할을 배제하는 ‘코리아 패싱’은 안 될 일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발 관세전쟁과 급변하는 안보 지형 속에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 무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양국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