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하면 전국체전, 소년체전과 관련해 유쾌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린 여자 선수들이 경기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봤고, 선수들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폭언을 당하는 현장에도 있었다. 물론 폭행도 목격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국체전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별 순위를 내지 말자는 제안도 했다. 그러면 각 시·도가 경쟁적으로 돈을 뿌리며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관행이 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25년 만에 부산에서 열린 전국체전은 변한 게 많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런데 현장에서 지켜보며 속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한 경기장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고등부 경기였다. 예전엔 소수만 행복했다. 시상대 꼭대기에 선 선수와 관계자들. 이를테면 코칭스태프와 가족, 해당 선수가 속한 체육회와 교육청 관계자 등등. 나머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시상대 꼭대기 아래에 선 선수들도 그랬다.
이게 웬일인가. 고등부 시상식이 열린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여고생 선수들이 함성을 질렀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시상대에 선 동료를 축하하면서 사진을 찍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손과 팔로 하트를 그리며 부지런히 추억을 남겼다. 그들 얼굴엔 패배자라는 그늘이 없었다. 그저 시상식이 즐거울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왜 저럴까. 올림픽이 열릴 때만 반짝 인기를 누리다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비인기 종목에 참가한 선수들. 거기다 메달도 따지 못한 선수들이 왜 저렇게 즐거울까.
생각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확장했다. 예전처럼 한 가정에 자녀가 몇 명이 있는 시대도 아니다. 아마 그 시상식에 있었던 선수들 중 상당수는 집에서 외동딸이거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자녀들이 비인기 종목의 운동선수로 나서는 것을 허락했을까.
도무지 답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랫동안 체육 현장을 지킨 전문가에게 내 생각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전형적인 ‘꼰대’ 사고였다.
따지고 보면 전국체전이 열리기 전 훈련장을 다니면서 체육 현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당장 학생들은 수업을 받고 훈련을 했다. 실업팀도 마찬가지다. 하루 8시간, 주 5일에 맞춰 훈련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훈련으로 선수들을 몰아세우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일종의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거기에 선수들을 향한 폭언이나 폭행 같은 구시대 유물은 자취를 감췄다. 최근 일부 폭언·폭행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불거졌지만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 현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지만 계속 받아들이지 못했다. ‘꼰대’의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보려고 했다.
체육 현장의 변화에 어느 정도 금이 간 꼰대식 사고는 전국체전 시상식에서 발랄한 여고생 선수들을 보면서 무너졌다.
그러다 부산시체육회가 제작한 전국체전 선수단 결단식 동영상을 보게 됐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즐겁지 않았다면, 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 없었어.” “한계를 뛰어넘어 강해진 나와 너, 우리는 이 뜨겁고 찬란한 축제를 즐길 자격이 있어.”
해답을 찾았다. 전국체전은 선수들이 반드시 성적을 올려야 하는 중요한 대회가 맞다. 그건 아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하나가 추가됐다. 죽을 만큼 열심히 훈련했으니, 전국체전이란 축제에서 성적에만 매달리지 말고 즐기자는 분위기가 선수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이다.
전국체전을 두고 이런 말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그들만의 체전’. 시민의 무관심 속에 선수들만을 위한 경기가 전국체전이었다. 이제는 탈피하자. 모두의 축제로. 전국체전에 참가한 선수들이 즐거우면 최선을 다한 그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스포츠 팬도 즐겁다. 부산 전국체전에서 몇몇 종목이 입증했다. 앞으론 그들만의 체전이 아니라 전 국민의 축제로 즐기자.
김희국 스포츠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