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힘든 일이 계속되면 누구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려는 마음을 갖는다. 그럴 때는 대개 가고자 하는 곳에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 교통편은 어떠한지 등을 먼저 살피게 된다. 입맛을 돋워줄 맛집 검색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음식이나 식당 홈페이지에 수없이 달린 댓글을 꼼꼼히 읽는 것 역시 이런 과정 중 하나다. 물론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른 만큼 거기에 적힌 내용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적어도 기본 정보만은 알 수 있어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경주는 예전부터 황남빵이 유명했던 곳이다. 근데 대형 행사를 치르면서 황남빵이 이제는 국제적 명성까지 얻게 됐다. 정부가 APEC 정상회의 참가자들에게 이 빵을 공식 디저트로 제공하면서다. 또 이재명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황남빵을 선물했으며 대표단에게는 200상자를 추가로 보내기도 했다. 시 주석은 나중에 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황남빵을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부는 행사를 ‘K-푸드’를 널리 알리는 기회로도 활용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회의장 인근에 ‘K-푸드 스테이션’을 마련해 호떡, 약과 등 우리나라 전통 다과의 매력을 선보였다. 또 수출용 할랄식품을 맛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해양수산부는 먹거리 트럭을 통해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 통합 브랜드인 ‘K-FISH’ 알리기에 나섰다. 외국에서 수요가 점차 늘고 있는 김스낵, 다시마부각칩 등을 시식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홍보 영상도 방영했다. 캐나다 총리 부인인 다이애나 폭스 카니 여사 등 행사장에서 한식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K-푸드의 대단함을 확인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APEC 정상회의에서도 증명됐듯이 K-푸드는 이제 한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K-푸드 수출액은 84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 늘었다. 1~9월을 기준으로 하면 역대 최대치다. 전체 수출액의 4분에 1에 이르는 라면(11억3000만 달러)과 김(8억8000만 달러)이 성장세를 이끌었다. 수출 상위 10개국 가운데 9곳이 APEC 회원국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또 APEC 회원국(21개) 중 한국을 제외한 20곳으로의 수출은 81.5%를 차지했다.
그러나 볕이 밝으면 그만큼 그림자도 드리우게 마련. K-푸드 열풍 뒤에는 숨기고 싶은 사실도 있다. 날로 커지고 심해지는 무역 수지 적자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사안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가공품을 포함한 농식품의 무역 적자액은 1975억3000만 달러(한화 284조3839억 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미국과의 무역 적자가 526억3000만 달러로 가장 컸다. 호주(222억4500만 달러) 중국(198억9900만 달러) 브라질(156억8500만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수산식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문금주 의원이 해양수산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수산식품 누적 무역 적자는 521억 달러나 됐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적자가 흑자를 넘어서는 흐름이 이어진다. 2022년에는 38억900만 달러로 역대 적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3년과 2024년의 적자액은 각각 33억8200만 29억5100만 달러였다.
이 때문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K-푸드 성과 알리기에만 몰두하면서 정작 무역 구조 개선 노력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경주 APEC 정상회의 중 한미 관세 협상이 사실상 타결되면서 위험 요인은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미국과의 무역 적자가 여전히 큰 만큼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난 7~8월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미 농식품 수출액은 1억3900만 달러 및 1억32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7%, 4.4% 줄었다.
업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정부가 농수산식품의 무역 적자 원인을 꼼꼼하게 살핀 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맞춤형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아울러 라면과 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한 새로운 K-푸드 개발로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정부는 또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고려, 물류 부담을 줄이는 조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역 적자 폭이 계속 커진다면 K-푸드의 화려한 모습은 결국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염창현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