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브랜드의 대명사인 나이키가 처음부터 잘 나간 건 아니다. 미국 육상 선수 필 나이트와 그의 코치 빌 바우어만이 설립할 당시만 해도 자본금 1000달러의 초라한 회사였다. 육상 선수들을 후원하며 조금씩 존재를 알리다 뜻하지 않은 기회를 만났다. 1970년대 초반 때마침 미국 중산층에 불기 시작한 조깅 바람이다. 이전까지 달리기는 전문 선수의 영역이었으나 일반인 일상에도 스며든 것이다.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며 무시한 타사와 달리 나이키는 재빨리 첫 조깅화를 선보였고 이것이 대히트를 치면서 전설은 시작됐다.

자전거 마니아가 여행 전 현지 라이딩 장소부터 물색하듯 러너들은 러닝 코스를 탐색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곳은 취재차 들렀던 호주 서쪽 퍼스라는 도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스완강을 따라 산책 겸 조깅 코스가 조성돼 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중동 하면 열사(熱沙)를 떠올리기 쉽지만 두바이는 달랐다. 해 뜨기 전 새벽은 생각보다 선선하다. 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친수공간에서 실컷 뛴 후 에어컨 빵빵한 숙소 건물로 들어서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부산에 ‘러너스테이션’이라는 공간이 생길 모양이다. 출퇴근하며 뛰는 직장인이나 동호인을 위해 물품보관함 탈의실 파우더룸 등을 갖춘 시설이다. 부산시는 내년 상반기에 예산 5억 원을 들여 서부산권과 동부산권에 각 1곳씩 만든다는 계획이다. 유력한 장소는 강과 바다가 교차하는 수영·광안리와 다대포다. 멋진 풍광과 시원한 바람으로 진작부터 러너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울은 이미 4곳이 설치됐고 내년엔 4곳을 추가해 25개 구마다 최소 1개씩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달리기는 골프나 테니스에 비하면 돈이 거의 안 들지만 선진국형 생활스포츠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그건 뛰는 사람이 아니라 뛰기에 적합한 환경에 있다. 달리기 좋다는 건 일단 공기가 맑고 공간 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뜻이다. 광안리 다대포 말고도 부산에서 러너들에게 ‘핫플’로 인정받는 장소는 많다. 동백섬 온천천 부산시민공원 북항친수공원 화명생태공원 등이 모두 그런 곳이다. 바다 강 산이 어우러진 부산은 러너들의 성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으로 알려졌다. 해외 관광객 연 300만 시대에 잘 갖춘 러닝 인프라는 좋은 관광 아이템이 될 수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