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에 연루된 국민의힘 의원들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은 20일 옛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의원 보좌진 당직자 등 26명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당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나경원 송언석 등 의원 6명에게 벌금 550만~240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다만 이는 형법과 국회법 위반 형량의 총합으로, 어느 쪽도 의원상실형 기준에는 미치지 못해 모두 직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면책 대상도 저항권 행사도 아니다”면서도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정치적 판단을 거쳤다는 점을 반영했다”고 판시했다.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된 첫 케이스로, 지난 2020년 1월 기소된 지 5년 10개월 만의 법원 판단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20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의 시작은 2019년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의사 진행을 방해할 경우 의원직과 피선거권까지 박탈하는 강력한 법이다. 2012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적으로 통과시켰는데 결국 국민의힘은 이 법에 의해 처벌받는 첫 정당이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국민의힘으로선 당선무효형을 피해간데 한숨을 돌릴 지 모른다. 그렇다고 면죄부를 받은 양 처신할 일은 아니다. 이번에 벌금형을 받은 일부 의원들이 “법원이 정치적 항거 명분을 인정했다”고 말하는 건 국민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사안이 법정에서 계속 판가름 나는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의원직 유지가 가능한 벌금형을 선고한 건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들이 극단적 행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일부 참작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당이 밀어붙여 성사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법을 추진하던 의원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만큼 졸속 입법이었다. 더구나 선거법만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왔던 그간의 관행도 무시한 행위였다. 그 결과가 총선 때마다 나타나는 위성정당 급조정당의 난립이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대화와 타협이다. 특히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고 물리적 충돌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회를 운영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망치와 빠루만 사라졌을 뿐 대한민국 국회는 선진화에서 여전히 거리가 멀다. 지금도 여당은 의석수를 무기로 힘 자랑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은 관례상 야당에 양보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까지 꿰차고 대법관 증원, 법 왜곡죄와 재판소원제 도입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한, 법을 어긴 자가 설사 국회의원이어도 선처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법원이 이번에 보여줬다.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법의 엄중함을 느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