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1997년 1월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과 7명의 고검장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개정 검찰청법의 위헌성을 판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직전 여야는 검찰총장 퇴임 후 2년 동안 새로운 공직을 맡거나 정당원이 될 수 없도록 합의, 처리했다. 전임 총장이 직을 물러나자마자 여당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게 계기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우려하는 여론이 크게 일었던 것. 기본권 침해라는 검찰의 반대가 있긴 했다. 그래도 민심은 법적 제한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그래야 검찰 수뇌부가 한눈팔거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검찰권을 행사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검사들은 제 일마냥 들끓었다. 이렇게 제기된 헌법소원은 그들의 뜻대로 위헌 판정이 났다. 헌법재판소는 직업 선택 자유와 공무담임권의 침해를 이유로 들었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최대 권부로 거듭났던 검찰. ‘무소불위’ 권력의 일탈을 견제하려는 그 첫 시도는 무참히 깨졌다. 검찰의 직역 이기주의와 몇몇 ‘정치 검사’들의 야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장면2. 17대 대선을 보름 앞둔 2007년 12월 5일. 검찰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누구나 예상했듯, 무혐의 불기소 처분이었다. 이 후보 소유로 의심된 ‘다스’. 그것도 증거가 없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비리 족쇄를 벗어던진 그는 역대급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수사를 맡았던 검찰 지휘부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대검 차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수사팀장은 대검 중수부장 등 꽃길을 밟았다. 10여 년 뒤 후배 검사들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유죄가 의심된다며 전직 대통령 이명박을 전격 기소했다. 법원은 BBK 주가조작과 다스 횡령 혐의를 인정, 그에게 무려 징역 17년을 때렸다. 이때 수사를 지휘한 이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공을 인정받아 검찰총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180도 전혀 다른 법적 잣대. “권력의 풍향계가 서로 달랐다.” 이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정치검찰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장면 1과 2를 관통하며 정치검찰은 마침내 ‘검찰 공화국’을 열어젖혔다. 그 주인공이 직전 대통령 윤석열이다. 퇴임 총장의 정치 투신을 가로막는 법이 살아 있었다면? 그는 바로 대권을 잡을 수 없었다. 평생 검사였던 그가 제1 야당 후보직을 낚아챌 수 있었던 비결도 마찬가지. 수사 판에서 익힌 권력 촉수로 ‘조국 사태’를 견인했다. 직후 정권의 압박을 버텨낸 바탕에도 정치검찰로 키운 정치 근육이 있었다. 그의 집권과 함께 검찰은 바야흐로 ‘화양연화’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느닷없는 ‘12.3 자폭계엄’과 함께 검찰에도 조종(弔鐘)이 울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개혁 속도전의 첫 번째타깃이 바로 검찰. 내년 가을이면 문을 닫게 됐다. “이제 더 이상 정치검찰의 발호를 볼 수 없다.” 여기에 국민 다수가 공감한 결과였다.
그렇게 사라지는 듯하던 정치검찰.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의 대장동 항소 포기로 정치의 중심에 다시 똬리를 틀 기세다. 야당은 검찰 수뇌부에 ‘정치검사’ 딱지를 붙였다. 현직 대통령이 엮인 사건이라 정권 외압에 검찰이 굴복했다는 것. 총장 대행을 맡았던 대검 차장도 인정하듯 이렇게 말했다. “용산과 법무부 관계를 고려했다.” “법무부 차관이 항소 포기 선택지를 제시했다.” 이에 전국 검사장·지청장들이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한 것. 법무부 장관이 해명에 나섰다. “신중히 판단해달라”고 했을 뿐, “지침”이 아닌 “의사 표현”이라고 강변했다. 총장 대행은 입을 꾹 닫은 채 사표를 썼다. 중앙지검장도 뒤따라 짐을 쌌다. 둘이 떠나기 무섭게 정권은 후임을 바로 임명했다. 언론은 ‘믿을맨’으로 자리를 채워 정면 돌파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그림 전개이다.
민주당은 해명을 요구한 검사장과 검사들을 정치검사로 규정했다. 탄핵에 묶인 파면을 징계로 만드는 입법, 검사장의 평검사 강등을 예고했다. 검사들의 ‘선택적 분노’도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김건희 주가 조작 무혐의 처분과 윤석열 구속 취소 항고 포기 때의 침묵을 콕 집어서 말이다. 반발에 앞장선 검사 중 이른바 ‘친윤검사’로 불리는 이들의 면면이 보이긴 한다. 이처럼 오늘내일하던 이들에게 ‘움찔’할 기회를 제공한 건 누구인가. 지난 14일 나온 한국갤럽 조사를 보자. ‘부적절’ 48% 대 ‘적절’ 29%. 대장동 항소 포기 민심이다. 권력 향배에 안테나를 치켜세운 새 정치검찰 태동에 대한 우려로 읽힌다. 정권 입맛에 드는 검사들을 줄 세우려는 권부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검찰청은 없어져도 검사 기능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절반의 검사는 중대범죄수사청에서 수사를, 나머지는 공소청을 담당한다. 자칫 책이라도 잡히면 정치검찰은 이를 숙주로 부활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오랫동안 봐온 검찰의 흑역사다. 만에 하나 켕기는 게 있다면 지금 반드시 털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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