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자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 대책으로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4일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공단과 4자 협의체를 구성·가동하면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는 첫 회의를 열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외환시장에 활용하려는 것은 최근의 고환율 장기화 추세가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이 올해 6월 한국을 포함한 9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올리며 정부 차원의 외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압박에 나섰음에도 이 같은 대책을 내놓을 만큼 긴박하다.

지난 24일 원/달러 환율 1.9원 내린 1,475.2원으로 시작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환율 대응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려는 것은 국민연금이 대표적인 달러 수요처이기 때문이다. 8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 1322조 원중 58%가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환헤지(환율 고정거래)를 최소화하고 해외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환헤지를 늘리면 환율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환율 안정 대책에 동원하는 것은 국민연금 운용 독립성을 해치고 연금 수익률과 안전성을 낮출 수 있다.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국민연금은 20%대 운용 수익률을 올렸다. 그러나 코스피가 미국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커질 때마다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연말 적정수익률은 가늠하기 어렵다.

환율을 좌우하는 달러 수급 요인은 경상수지와 순대외금융자산 등으로 나뉜다.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지금은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돈이 늘면서 최근 1년간 순대외금융 자산은 812억 달러(약 120조 원)나 늘었다. 이는 국민연금과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영향이다.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환율 방어를 위해 ‘환헤지’를 늘리면 국민 노후 자금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 이번에 환율이 오른 원인이 과거와 다른 점도 주목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1.25~1.5%포인트 낮은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 서학개미들의 해외투자, 기업 대미 투자 확대 등으로 달러 수요가 늘어 국민연금만으로 환율이 방어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환율이 높으면 많은 국민이 피해를 본다. 수입 물가 상승이 장바구니 물가를 자극하고, 해외여행·유학 경비도 늘어난다.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 부담이 높아지고 물건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 환율 안정이 시급한 이유다. 미국·일본 등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서학개미를 다시 국내 증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해야 하겠다. 우리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보유하는 대신 환전하는 방안을 유도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활용같은 미봉책 대신 지속가능한 환율 안정화 전략을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