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728조 원 규모(727조9000억 원)의 2026년도 예산안을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합의 통과시켰다. 윤석열 정부 때 편성했던 올해 예산(673조3000억 원)보다 8.1%(54조6000억 원) 증액된 수치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기지 않고 법정시한을 준수한 것은 2020년 이후 5년 만이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정치가 극단을 치닫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가 모처럼 민생을 위해 예산안 합의에 전격적으로 손을 잡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여야는 정부 원안에서 4조3000억 원을 감액하고, 감액 범위 내에서 증액해 총지출 규모를 정부안 대비 늘어나지 않도록 했다.

728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을 담은 2026년 예산안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고 있다. 김정록 기자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됨에 따라 부산시는 사상 처음 국비 10조 원 시대를 열게 됐다. 최대 현안인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 예산은 정부안인 6889억 원을 유지했다. 가덕도신공항 부지공사가 7개월 넘게 중단되면서 일각에서는 내년도 예산 감액 우려도 있었지만 원안을 사수하면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애초 정부안에 담기지 않았던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 사업 예산 19억2000만 원도 확보한 점은 다행스럽다. 아울러 조선 인공지능 전환(AX) 특화 모델하우스 구축 및 실증 사업 예산을 확보하면서 부산의 주력산업인 조선·해양 생태계의 혁신적인 전환을 이끌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 전체로 보면 이재명 정부가 강조했던 인공지능(AI)과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정부는 AI와 R&D 분야에 35조3000억 원을 배정했는데 올해와 비교해 20% 가까이 늘어났다. 국민의힘이 AI 지출 예산이 과도하다며 2000억 원을 감액한 점은 아쉽다. 반면 지역화폐와 농어촌 기본소득 등 복지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침체된 내수 소비 진작과 민생 문제 회복을 위한 재정 지출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함께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지역화폐 예산 1조1500억 원을 사수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1년(1조2522억 원) 이후 두 번째로 많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안은 정부안 1703억 원에서 기존 7개 군 외에 3개 군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도록 예산 637억 원을 증액해 2340억 원으로 확정됐다.

정부가 확장 재정 기조를 견지하면서 재정건정성도 악화한다. 전세계적으로 확장 재정 기조는 일반적이지만 부작용이 큰 데다 우리나라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다. 내년 예산이 55조 원가량 늘면서 국가채무는 1413조8000억 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51.6%다. 과거 정부와 정치권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외쳤던 것을 생각하면 재정건전성 우려는 커진다. 재정 중독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 혈세로 조성된 예산이 정권이나 정치권의 쌈짓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