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시에 따르면,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Inc.) 주식을 신규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 기업에 대해 보수적 접근을 유지해 온 버크셔의 투자 결정은 단순한 포지션 변경을 넘어, 시장 구조와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20년 전만 해도 구글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와 비슷한 1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 알파벳의 시가총액이 3조 달러를 넘어선 반면, 삼성전자는 4000억~5000억 달러에 머물러 있다. 이 격차는 단순한 사업 구조의 차이나 외부 환경 요인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그간 두 기업이 선택해 온 성장 방식의 차이가 누적된 결과다. 구글은 지난 20년간 약 260개 기업을 인수하며 미래 산업의 기반을 외부에서 적극 흡수했다. 유튜브(YouTube)·안드로이드(Android Inc.)·딥마인드(DeepMind) 등 현재 핵심 사업은 이런 M&A를 통해 확보된 기술과 인재, 데이터가 그 바탕이다. 구글은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왔고, 확보한 자본을 공격적으로 재투자하며 외부적 성장에 필요한 생태계를 빠른 속도로 확장해 왔다. 반면 삼성전자의 같은 기간 M&A 건수는 약 30개에 그친다. 대부분이 기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수직계열화 성격에 가까웠고, 플랫폼 확대나 생태계 전환을 노린 대형 M&A는 거의 없었다. 내부적 성장 전략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변화가 빠른 디지털 시대에는 시간과 기회비용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양 사의 전략적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외부 성장 전략을 과감히 채택한 기업은 미래 산업에 더 빠르게 진입할 수 있고, 성장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기업가치를 기반으로 한 자본 투입은 더 많은 혁신을 낳고, 그 혁신은 다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선순환을 만든다. 반대로 M&A에 소극적인 기업은 자체 영업력·마케팅·제품력·신규 고객 확보 등을 통한 내부적 성장에만 의존하고, 동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삼성전자와 구글이 전혀 다른 성장 전략을 택한 이유는 뭘까? 필자는 그 결정적 배경이 두 나라의 기업가치 평가와 신뢰 방식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본다. 미국은 기업 정보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되고, 시장이 평가한 기업가치가 곧바로 자금 조달과 M&A로 연결되는 구조가 자리 잡혀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록 필요한 회사를 과감하게 인수해 성장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천문학적 인수 자금을 단순히 영업이익으로 충당하려 했다면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렸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 정보의 투명성과 공시 품질이 기업마다 차이가 크고, 기업가치가 시장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불완전하면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할인’을 적용하게 되고, 이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기업의 가격 협상력을 약화시킨다. 실제로 한국 기업의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오랫동안 1배 미만에 머물러 왔다. 이는 기업의 시장가치가 장부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뜻이며, 이러한 저평가 현상 역시 한국 시장이 지닌 구조적 요인의 결과다. 기업가치가 낮게 책정되면 매각 기업은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매각을 주저하게 되고, 인수 기업 또한 실제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려워 결국 M&A 자체가 활발해지기 어렵다.
신뢰할 수 있는 기업 가치는 단순히 ‘얼마 짜리 회사인가’를 넘어,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투명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된 기업가치는 M&A 환경에서 매각 기업에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프리미엄으로 환산해 정당한 가격을 보장해 준다. 매수 기업에는 시행 착오와 그에 따른 시간·비용을 크게 줄여 주는 효율적 확장 수단이 된다. 결국 이러한 구조는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에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2017년 연례총회에서 워렌 버핏은 구글의 투자를 유보했고, 그 사이 알파벳의 가치는 M&A 등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결정적인 투자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고 인정했다. 이는 기업가치가 더 이상 재무지표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AI 시대에는 데이터·기술·생태계와 이를 둘러싼 시장 신뢰 같은 구조적 요소들이 기업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대형 M&A 중심의 생태계 재편으로 나타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흐름을 보기 어렵다. 이는 외부적 성장 전략이 한국 기업의 기본 전략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이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시장을 주도하느냐, 아니면 도태되느냐’의 갈림길의 결정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