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살을 가공한 요리는 다양하다. 조선 숙종 45년(1719년) 간행된 ‘진연의궤’에는 으깬 생선에 녹말 참기름 간장을 넣고 찐 생선숙편(生鮮熟片)이 등장한다. 현대판 어묵이라 하겠다. 일본 어묵의 기원은 무로마치 시대(1336~1573년) 중기.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는 “일본이 어묵의 원조라는 인식은 생선살을 튀기는 방식이 유행하면서부터”라고 분석한다.
어묵의 역사는 부산 근대사를 투영한다. 1910년 개장한 부평동시장의 대표 상품이 쌀 채소 청과류와 어묵이었다(1924년 조선총독부 발간 ‘조선의 시장’). 광복 직후 문을 연 동광식품(부평동)과 삼진식품(봉래시장)은 대한민국 어묵산업의 시조새. 한국전쟁 피란민은 부산 앞바다에서 잡은 풀치(새끼 갈치)와 깡치(새끼 조기)를 저민 어묵과 달콤 짭짤한 국물로 허기를 달랬다. 1960년대는 어묵의 춘추전국시대. ‘빅3’로 불렸던 동광식품 삼진식품 환공어묵의 기술자들이 독립해 독특한 맛과 다양한 재료로 승부를 건다. ‘초량어묵’의 원조인 영진식품이 초량시장에서 창업한 해가 1966년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산사람의 피에는 어묵 국물이 흐른다.
1990년대는 부산 어묵의 암흑기다. 대기업이 어묵시장에 뛰어들면서 전통시장 수제어묵과 중소 제조업자가 위기를 맞는다. 1998년 한일어업협정으로 어로구역이 축소되자 어묵 생산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1999년 4월 국제신문에는 “부산 대림수산이 어묵 원료인 명태 어획량 감소를 타개하기 위해 캐나다 연육공장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쇠락하던 부산 어묵산업은 2000년대 재도약 한다. 부산어육제품종합협동조합은 현대적 시스템을 도입해 “어육은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킨다. 또 어묵 크로켓이나 어묵 햄버거 같은 베이커리형 상품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어묵 기업 삼진식품이 오는 22일 코스닥에 상장한다. 지난 3~9일 기관 투자자 수요 예측에선 1308.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기업공개로 마련한 자금은 상온 어묵 신제품 개발과 해외 매장 확대에 투자한다. 어묵을 라면 못지 않은 글로벌 K-푸드로 키우기 위해서다.
로컬푸드가 각광받는 시대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접한 외국인들은 어묵탕을 먹으려 부산을 찾는다. 지난해 부산 방문 외국인 관광객은 맛집 탐방을 가장 만족스러운 활동(45.7%)으로 꼽았다(부산관광공사 실태조사). 삼진식품이 어묵의 세계화에 성공하면 돼지국밥과 밀면이 후속주자가 될 것이다.
이노성 미래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