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책임을 따지고자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는 기업 윤리가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실질적인 책임자인 김범석 의장을 대신해 나온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는 “김범석 의장이 왜 나오지 않았는 지 밝혀 달라”는 질의에 “I’m happy to here(이 곳에 와서 기쁘다)”라는 수상 소감같은 동문서답을 내놨다. 그는 “내가 사장이니 나에게 질문하라”는 등 오만한 모습도 보였다. 의도된 ‘언어장벽’을 핑계로 노골적으로 질의를 피해갔다. ‘맹탕 청문회’를 지켜본 많은 국민은 쿠팡이 매출 90%를 차지하는 대한민국과 소비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를 확인하며 탄식했을 법 하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로켓 배송’이라는 새로운 유통 프레임을 갖고 나온 쿠팡은 미국 증시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국내 1위 이커머스 브랜드로 부상했다. 막강한 점유율과 멤버십을 무기로 콘텐츠(쿠팡플레이)와 음식배달(쿠팡이츠) 시장에서도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3370만 개의 개인 정보 유출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기는커녕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인다. 로저스 임시대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중대 사고가 아니어서 공시할 의무는 없었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이번에 유출된 정보가 ‘민감 정보’에 해당하지 않으며, 중국 등 어디에도 유통됐다고 확인한 바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회원 탈퇴가 우려되자 쿠팡은 수수께끼 같은 절차를 만들면서 ‘탈팡(쿠팡 탈퇴) 가이드’가 온라인에 유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쿠팡의 기업 윤리 부재의 단면은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미국 기업이라는 ‘국적’ 논란은 물론 고용 행태까지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물류센터 안전 문제 등 열악한 노동조건은 여러 차례 지적됐다. SBS 보도에 따르면 2020년 노동자가 숨진 사건과 관련, 김 의장이 ‘고인이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말라’며 임원진을 질타하며 사건 은폐를 지시한 정황이 나왔다. 쿠팡의 이 같은 행태는 업계 1위 이커머스라는 잘못된 자신감에서 불거졌다는 시각도 있다. ‘안 써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는 로켓 배송 서비스는 이미 ‘대체불가능한’ 영역으로 본다는 것이다. 단기간 타격은 있겠지만 결국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소비자가 로켓 배송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자만이 깔려 있다.

정부 여당은 쿠팡에 대한 적극적인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정부는 18일 이번 사태가 국민 일상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규정하고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침해 사고 조사 및 수사, 이용자 보호 대책, 기업 책임성 강화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쿠팡 유관 국회 상임위원회들이 참여하는 연석 청문회를 열었다.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회 증언·감정 법률 위반(불출석) 혐의로 김 의장을 고발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