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와 지역 정치권이 KTX와 SRT 등 고속열차(산천)를 태화강역으로 유치하는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사업을 지난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기현 국회의원은 지난달 15일 유치 필요성을 알리는 정책토론회를 주최했다. 울산시도 지난해 11월 20일 미래교통도시로 도약할 ‘5대 교통정책’ 가운데 하나로 이를 포함해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태화강역에도 2027년부터 편도 기준 하루 3회, 울산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2028년부터는 5회씩 고속열차가 운행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울산은 울주군 삼남읍 울산역에 고속열차가 정차한다. 운행 횟수는 주중 하루 평균 101~122회, 주말은 131회다. 이용객은 개통(2010년 11월 1일) 다음 해는 하루 평균 1만524명이던 것이 2014년 기준 1만7388명으로 매년 평균 3.94%씩 증가했다. 이는 전국 고속열차 정차역 가운데 3, 4위 수준일 정도로 운행 및 수송실적이 우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시와 지역정치권이 태화강역에도 고속열차를 유치하려는 이유는 뭘까. 울산역은 도심에 위치한 태화강역 기준으로 20㎞나 떨어져 있다. 접근성 측면에서 보면 태화강역은 중구와 남구 동구 북구 등 4개 지자체와 반경 10㎞ 이내의 가까운 사통팔달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반면 울산역은 울주군 가운데 언양을 중심으로 한 서울주 지역만 가깝고, 온양·온산읍, 서생면 등 남부권은 오히려 태화강역이 접근성이 좋다. 이것이 주된 이유다.
태화강역에서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기대효과는 차고 넘칠 정도다. 서울 등 수도권으로 가기 위해 시내(시청 기준)에서 울산역까지 먼 거리(약 35분)를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24번 국도의 체증 완화는 덤이다. 연계교통 및 환승체계가 잘 구축돼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태화강역의 역할과 기능은 지금보다 배가 될 것이다. 반면 시간적 경제적 효율과 편익에서 비할 바가 아닌 울산역은 상대적으로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공산이 높다. 태화강역 활성화를 마냥 장밋빛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나아가 이는 다양한 딜레마를 울산시에 던져줄 수도 있다. 갈수록 태화강역의 이용 수요가 고속열차 공급을 자극하게 돼 울산역 정차 횟수 감소로 이어지게 되면 시가 추진하는 서부권 개발의 사업성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롯데가 울산역 복합환승센터 사업을 포기한 상태인데 역세권 기능까지 약화된다면 시는 계획 자체를 전면 재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아울러 인근 양산시에서 역사 이전을 요구할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15년 전 양산시가 치열하게 역사 유치전을 폈던 점을 감안하면 울산의 고속철도 양 역 체제를 곱게 바라보고만 있을 지 의문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울산공항의 존폐문제다. 울산공항은 울산역으로부터 차로 40분 넘는 거리에 있음에도 이용객이 매년 급감해 한때 폐항까지 검토될 정도였다. 고속열차 운행 전까지만 해도 울산공항의 연 평균 수송인원은 100만 명에 달했지만 이용객이 40만 명 선으로 반토막난 지 오래다. 울산시가 매년 10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항공사들의 운항기피는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서울(김포)행 비행기는 고작 하루 3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5분 거리인 태화강역에 고속철도가 들어온다면 이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울산공항의 호홉기를 떼는 결과가 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미 2023년 실시한 용역에서 ‘이전도, 확장도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울산공항을 존폐의 기로에 한 발짝 더 내몰게 되지 않을까.
너무나 당연하다 싶은 태화강역이 아닌 울산역에 고속철도 역이 위치한 것은 지금으로 봐선 모순과 불합리 그 자체다. 개통 당시에는 양산 경주 등 인근 지역과의 거리도 고려해야 했고, 일부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정책 결정권자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했더라면 우려하지 않아도 됐을 문제가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방종근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