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 1991)의 배경이 된 ‘퐁네프 다리’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 파리로 날아가 본 적이 있는가? 퐁네프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지만, 영화 속에서 그 다리는 미래로 가는 길이 아니다. 그저 오늘을 버티기 위한 장소,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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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열정 쓸쓸함 같은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해 질 무렵 파리의 에펠탑. |
사랑도 마찬가지다. 퐁네프 다리에서 사랑은 그저 머물다 간다. 사랑은 늘 영원을 약속하며 다가오지만, 대부분 잠시 머물다 떠난다. 알렉스와 미셸의 사랑도 그랬다. 그들은 서로를 구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주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가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의미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가끔 어떤 사랑은 함께 오래 남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이들의 사랑은 내일을 묻지 않는다. 지금 서로의 체온이 있는지만 확인한다. 불꽃놀이는 밤하늘을 잠깐 밝히고 사라진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빛의 잔상처럼, 사랑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사람 안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 실패하면 정말 실패한 것일까? 그 사랑이 남긴 흔적이 이후의 삶을 바꾸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것은 아닌지. 퐁네프의 다리 위에서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머물지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인생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을 뿐이다.
영화에서 잠깐 스친 사랑이 인생 전체를 바꾸는 영원한 기억이 되듯 와인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한 잔이 평생이 되는 와인 경험, 사랑처럼 와인은 언제 마셨는가가 전부일 때가 있다. 첫 성공의 밤, 이별 후의 혼술, 오래된 친구와의 재회처럼 그날의 한 잔은 이후 어떤 빈티지를 마셔도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아름답지 않아 더 진짜 같았던 사랑처럼 산이 튀고,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와인이지만 그 순간 감정과 맞아떨어질 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각인되어 더 기억되는 와인이 된다. 첫 바롤로, 첫 내추럴 와인, 처음 혼자 마신 고급 와인처럼 첫 경험의 한 잔은 이후 수십 병을 마셔도 기준점으로 남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한 잔이 된다. 생산자의 말 한마디, 포도밭의 풍경, 와인 한 병에 담긴 사연, 그날 우리는 와인이 아니라 이야기를 마신 순간으로 그 서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와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기억이다. 어디서 마셨는지, 누구와 마셨는지, 어떤 말을 삼켰는지까지 기억에 남는다. 퐁네프 다리 위에서의 사랑처럼, 어떤 와인은 오래 남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밤, 단 한 잔의 온도로 사람의 인생에 되돌릴 수 없는 기준을 만들어 버린다. 알렉스와 미셸의 사랑이 그랬다. 완성되지 않았고, 안정되지 않았고, 결국 함께 머물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사랑 이후, 그들은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같은 컨디션으로, 같은 감정으로 마실 수 없는 한 병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와인을 다시 열기를 망설인다. 맛이 아니라 기억이 변질될까 두려워서이다.
퐁네프 다리에서의 사랑은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한 병의 와인이 인생 최고의 만찬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바꾼 저녁이 되는 순간과 닮아있다. 사랑도 와인도 영원이 아니라 각인을 남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영원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기억이다.
영화 속 파리의 감성 사랑 열정, 약간의 쓸쓸함 전부를 담아낼 수 있는 프랑스 와인, 낭만적이면서 격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와인 한잔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