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설날 고속도로에는 부산과 경남을 오가는 차량이 쏟아진다. 이들의 동선은 행정구역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촘촘해 보인다. 부산 경남은 이미 하나의 권역으로 묶여 있다. 집은 김해, 학교는 부산, 일터는 양산에 있거나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행정은 각각의 경계선에 머물러 있다. 생활권은 하나인데 정책은 둘인 셈이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나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이미 하나로 움직이고 있는 생활권을 제도적으로 묶어,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함께 풀자는 현실적인 선택에 가깝다. 사실 이 논의의 뿌리는 2020년부터 약 3년간 추진하다 무산된 부울경 메가시티에 있다. 수도권 집중에 대응하기 위해 부산 경남 울산의 산업과 교통, 물류와 인재 정책을 공동으로 설계하는 등 하나의 초광역 경제권으로 묶자는 구상이었다.
3개 시·도가 어렵게 이끌던 메가시티 논의는 2022년 9월 경남이 발을 빼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박완수 경남지사가 경남연구원에 지시해 취임 3개월 만에 만들어낸 ‘부울경특별연합 실효성 분석 용역’에서 “옥상옥으로 비용만 낭비할 뿐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동력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완성단계에 이르렀던 메가시티에 부정적이던 박 지사가 더 넓은 범위의 행정통합을 주장했다가 막상 행정통합이 눈앞에 다가오자 또다시 뒤로 내빼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통합의 필요성은 현실 문제에서 더 분명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물 문제다. 낙동강 수질 논란과 취수원 갈등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상류와 하류, 개발과 환경보호, 지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대책은 번번이 지연됐다. 하나의 유역을 두 개의 행정이 따로 관리하는 구조에서는 근본 해결이 쉽지 않았다. 물은 행정구역 경계를 따라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덕도신공항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추진하지만 물류와 산업 효과는 경남으로 확장된다. 공항 배후도시, 교통망, 산업단지 조성까지 포함하면 이미 부산 단독 사업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럼에도 투자와 계획, 역할 분담은 별개로 움직인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둘이 나눠 추진하는 구조에서는 속도도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광역 교통망, 산업단지 재편, 의료와 교육 인프라 확충까지 대부분 현안이 초광역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물론 행정통합이 만능은 아니다. 재정 배분, 지역 정체성, 공공기관 배치 등 민감한 문제도 많다. 자칫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갈등만 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느냐가 아니라 통합하지 않으면 무엇을 잃는가다.
다행히 올해 들어 부산 경남 행정통합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과반을 넘겼고, 특별법 추진도 가시화되고 있다. 충남·대전, 전남·광주, 경북·대구는 이미 특별법안을 내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4년 전 국내에서 유일하게 메가시티를 추진했던 부산 경남은 법안 제출 시기를 저울질만 하고 있다. 재정분권 예타면제권 등 중앙정부의 권한 상당 부분을 이양해 달라는 조건을 내건 부산 경남의 요구에 정부가 얼마만큼 응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 당시 경남지사였던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은 지난 10일 경남도의회를 찾아 부산 경남의 로드맵은 재고해야 한다며 “부산 경남 통합이 2년 늦어지면 20년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주민투표를 대규모 여론조사로 갈음하고, 정부의 권한 이양을 행정통합과 병행해야 한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명절 길게 늘어선 차량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답은 보인다. 부산과 경남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도로를 쓰고, 같은 강물을 마시고, 같은 병원을 찾는다. 생활은 하나인데 행정만 둘이라면 그 불편과 비효율은 결국 부산 경남의 시·도민이 떠안게 된다. 거대한 생활권으로 움직이는 수도권과 달리 경계선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제 행정이 그 흐름을 따라갈 차례다. 경계는 지도 위에만 남기고, 정책을 하나로 움직일 때다.
유정환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