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는 양(陽)이고 배추는 음(陰)이다. 무는 낮의 뜨거운 태양 볕을 받으며 자란다. 배추는 밤의 서늘한 달빛을 머금으며 제 몸을 키운다. 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남성성을 상징한다면, 배추는 잎을 안으로 말아 생명을 품은 여성성을 닮아있다.
무의 뿌리는 깊고 어두운 땅속에 몸을 묻는다. 대지는 음이기에 양인 무의 뿌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자연이 보여주는 음양의 첫 번째 조화이다. 본래 무는 밖으로 드러난 잎보다 땅속에 박힌 몸체가 더 크고 단단한 법이다. 하지만 기운이 넘치면 흙 위로 제 몸을 쑥 내민다. 양기(陽氣)란 밖으로 발산하는 성질을 지니기에, 숨기지 못하고 제 존재를 뽐내며 잘난 척을 한다. 양은 모름지기 양다워야 하는 법이다. 양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음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배추는 태양의 기운을 갈구하듯 널따란 잎을 펼친다. 뿌리는 작으나 양기를 흡수하는 잎은 유난히 크고 넓다. 배추의 속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그 내실을 옹골차게 만들기 위해 지푸라기로 동여매 준다. 배추는 가르고 쪼개기 전까지는 결코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안으로 갈무리하고 은밀하게 감추는 것이 음의 속성이다. 잎이 하늘로 펼쳐진 채 속이 차지 않은 배추는 싱겁다. 기운을 안으로 모아 내실을 다져야 하는 음의 본분을 잊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기운을 가진 무와 배추는 겨울의 문턱에서 하나가 된다. 겨울은 음의 계절이고 주재료인 배추 또한 음이다. 자칫 치우치기 쉬운 이 음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은 양기가 강한 부재료들이다. 찹쌀풀, 고춧가루, 생강, 마늘은 모두 뜨거운 성질을 품고 있다. 여기에 큼지막하게 썬 무를 배추 사이사이에 끼워 넣음으로써 음양의 천칭은 균형을 이룬다. 부족하면 더하고 넘치면 덜어내는 지혜가 김장 한 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성정과 인연으로 이어진다. 무 같은 사람은 겉으로 단단해 보이나 그 속에 깊은 단맛을 감추고 있고, 배추 같은 사람은 부드러워 보이나 겹겹이 쌓인 속내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이는 사실 부드러움을 너무 깊숙이 숨기고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제 속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강한 남자도 그의 철벽을 허무는 여인의 다정한 진심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진다. 딱딱한 쇠가 열을 만나면 부드럽다 못해 액체가 되는 이치와 같다.
배추 같은 사람은 겉모습은 유연하지만 그 이면에 강인한 본성이 숨어 있다. 부드러운 물은 시멘트를 결집시켜 딱딱한 콘크리트를 만든다. 물의 숨은 본성이 사실은 단단한 결속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유연한 물이 초고압의 정교함으로 강철판을 절단하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가 바위에 구멍을 내는 법이다. 사교성 좋고 유들유들한 이가 의외로 냉정할 수 있다. 부드러우면 부드러울수록 그 마음속에는 단단한 경계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가 같은 재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결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 ‘좋은 사람’이란 만인에게 칭송받는 이가 아니라, 나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나와 맞는 사람’이다. 관계의 행복은 나의 기질을 먼저 살피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며 그 간극을 메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시작된다. 무와 배추가 서로의 기운을 빌려 깊은 맛을 내듯, 사람과 사람 사이도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비로소 익어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