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 구글이 지난주 AI 구동에 필요한 메모리 사용량을 대폭 줄여 주는 ‘터보퀀트’ 기술을 발표한 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칩 제조사들의 주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31일 삼성전자는 5.16% 하락했고, SK하이닉스는 7.56% 급락 마감했다. 미국의 마이크론도 전날 10% 가까이 하락했다. 중동전쟁 장기화라는 시장 우려를 감안해도 주가가 지나치게 빠졌다.
터보퀀트는 AI 메모리 사용량은 6분의 1로 줄이고 연산 속도는 최대 8배까지 높여주는 ‘게임체인저’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을 변환하는 게 이 기술의 핵심이다. 같은 물건을 더 작은 상자에 효율적으로 담는 것처럼 AI가 사용하는 데이터를 최대한 압축해 저장 공간을 줄여준다. 물론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성능 검증도 필요하지만,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메모리 사용량이 줄어들면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낮아지고 장기적으론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여지가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긴장하는 이유다.
일각에선 터보퀀트가 메모리 제조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제번스의 역설’을 거론하며 오히려 AI 생태계를 확장시켜 메모리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가 그의 저서 ‘석탄 문제’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석탄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석탄 소비를 줄이려 증기기관의 효율성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기차·공장·선박 등 산업 전반에 증기기관이 퍼지면서 석탄 사용량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이후 기술 발전의 결과가 직관적 예상과 정반대로 진행되는 현상을 ‘제번스의 역설’로 부르게 됐다. 지난해 초 중국이 내놓은 딥시크 사례도 이를 보여준다. 저비용 AI 모델의 등장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경쟁사들에 위기감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로는 AI 개발을 더 효율적이고 비용 대비 성능 중심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반도체 패권 다툼은 국가의 운명이 달린 전략 경쟁이 됐다. 우리 경제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갖는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터보퀀트가 논문 수준에 머물지, 아니면 AI 생태계를 확장시키는 촉매가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초격차 기술 하나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