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공해와 맞닿은 영해는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하고 있다. 인위적 건설공사 결과물인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는 통행료 징수를 인정받지만, 그 외 국제 항행이 허용되는 해협에 비용을 청구하는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란·이스라엘·미국 간 전쟁 당사국 이란이 국제법까지 무시해 가면서 ‘자연적· 법적 권리’의 주권 행사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정의해버렸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에 전 세계 이목이 쏠려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해협 긴장과 해양 질서 관계의 본질부터 이해해야 한다.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좁은 바다는 단순한 해협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혈관’이자 ‘전략적 병목(strategic chokepoint)’이다. 작금의 긴장과 봉쇄 사태는 이 혈관이 얼마나 쉽게 압박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란이 해협 봉쇄에 나서자 국제 유가와 해운·보험료가 즉각 요동쳤고, 하루 120척가량 오가던 항로는 사실상 기능을 멈추면서 모든 국가의 선박들이 해협에 묶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압박은 유사 이래 최악의 물류 위기 상황까지 야기하면서 에너지 가격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고 있다.
현 상황의 시사점은 해협의 안정 여부에 좌우되는 해양 물류의 변동성이나 취약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해역의 긴장이 에너지·환율·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까지 드러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수입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상당량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상황은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해양 물류 리스크는 곧바로 국가 경제 리스크로 전이된다. 이는 해양 주권이 영토 개념을 넘어 ‘경제 주권’의 핵심 요소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험은 항상 반복되어 왔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탱커 전쟁’, 2011년 이란의 봉쇄 위협, 그리고 2021년 수에즈 운하 에버기븐호 좌초 사태까지, 해상 교통로의 통제는 언제나 글로벌 경제를 흔들었다. 홍해, 파나마 운하, 말라카 해협 등 전통적 항로들 역시 정치·군사적 갈등이나 기후 변수에 따라 언제든 병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적 위기 지점’이다. 초크포인트 활용은 효율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다. 평상시에는 최단 경로 활용으로 물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그 자체가 목줄이 된다. 결국 문제는 특정 해역이 아니라, 병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 자체다.
주요 해양국들은 이미 다각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럽 최대 항만 로테르담항은 물류 허브를 넘어서는 ‘에너지 항만’으로 기능을 전환 중이다. 북해 해상풍력 기반의 그린수소를 수입·저장·재분배하는 인수터미널과 E-fuel 생산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콤플렉스 구축을 통해 미래 에너지 공급망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실행 중이다. 피해 갈 수 없는 글로벌 이슈인 친환경 에너지를 넘어서는, ‘에너지 흐름의 통제권’까지 항만을 통해 장악하겠다는 선언이다. 에너지 패권은 더 이상 생산지에 있지 않고, 유통과 저장, 재분배를 설계하는 ‘해양·항만 인프라’에 있다. 과거 석유 시대가 산유국 중심이었다면 미래 에너지 시대는 항로와 항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해양 주권은 에너지 흐름을 설계하는 능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북극항로가 대표적 사례다. 유럽 아시아 기간 항로인 수에즈 항로와 비교하면 30% 항로 단축이 가능하므로 물류 효율성과 비용 절감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다. 실제로 부산-로테르담 항로를 북극항로로 설정하면 항해 기간은 10일 이상 단축될 수 있다. 하지만 북극항로 역시 또 다른 지정학적 공간이다. 러시아의 관할권, 기후 변화, 환경 규제 등 다양한 리스크가 공존한다. 새 항로를 확보한다고 해양 주권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항로를 확보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적 포트폴리오’가 오히려 더 필요하다.
오늘날 해양 주권은 세 가지 축으로 재정의된다. 첫째, 로테르담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에너지 항만 등의 해양 인프라 주도권. 둘째, 북극항로 등 대체 해상 루트 확보. 셋째, 국제 해양 질서에서의 규범과 영향력이다. 이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다면, 특정 해협의 위기는 언제든 국가 경제에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문제 접근이 다소 단편적이며 중장기 전략도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 산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해양을 물류 통로 이상의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는 데는 부족하다. 에너지의 운송과 저장에 있어서 항로와 항만의 활용 전략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국가 차원의 프레임도 필요하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경고다. 해양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는 에너지와 경제 흐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취약성은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드러난다. 선택은 분명하다. 해양을 바닷길로만 쓰는 데 머물 것인가, 해양을 설계하는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해양 주권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