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의 기억은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상흔으로 남아 있다. 8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1964원까지 치솟았다. 실업률은 9%대를 넘나들었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들은 공원 벤치로, 등산로로 내몰렸다. 재벌기업의 부도와 실업 사태는 중산층의 붕괴를 가져왔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 처절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전에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와 마주했다. ‘사회적 대화’였다. 1998년 1월15일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고, 2월6일 노사정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정리해고제 도입이라는 노동계의 뼈아픈 양보와 함께 재벌 개혁·노동기본권 확대·사회보장 강화가 한 테이블에 올랐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사회적 합의는, 주5일 근무제라는 노동문화의 대전환을 만들어냈다. 사회적 대화는 국가적 위기와 전환의 시기에 새로운 사회 계약을 써 내려가는 플랫폼이었다.
그 유산은 지역으로 확산했다.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개편됐고, 지역에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사회적 대화의 공간이 중앙에서 지역으로, 노사정에서 주민과 시민사회로 넓어진 것이다. 물론 경사노위는 경제가 안정되면서 과거의 긴장감을 잃었고,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운영 편차가 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지역 사회가 노동·복지·경제 문제를 주민과 논의하는 유일한 제도적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그런데 지금, 이 공간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지난 3월 31일 국회에 발의된 ‘지역고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시·도 ‘지역고용노동심의회’ 산하의 분과위원회로 편제된다. 사회적 대화 기구를 고용정책 집행체계의 하부기관으로 묶어두겠다는 것이다. 분과위원회는 위임받은 사항만 심의하고 그 결과를 상위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독립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적 대화의 공간이 ‘고용정책 보조기구’로 협소화되는 구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조용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그 중심에 AI 혁명이 있다. 어쩌면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격변과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전환을 앞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자리의 51%가 AI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 중 27%는 AI에 의한 대체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분석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고용의 양을 무너뜨렸다면, AI가 촉발하는 전환은 노동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겨나는 일자리가 같은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술 전환의 과실을 누가 가져가고 그 충격을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짊어질 것인가에 대한 대책도 전무하다. 로봇세니 기본소득이니 쉽게 하는 이야기도 결국 사회적 대화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야 할 주제이다. 이것은 고용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계약의 문제다.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시민의 보편적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가장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경사노위 제1기 출범 토론회에서 상대의 상황이 어떤지 서로 마주 앉아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게중심은 노사 간 불신 해소와 고용 현안 조율에 있었다. 사회적 대화를 노사관계 관리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식이다. 다행히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노동시장 격차 해소부터 AI와 산업 대전환의 파고까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복합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면 노동계와 기업,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의 본질에 다소나마 접근한 발언이다,
1997년의 고통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렵게 합의한 것이 사회적 대화의 가치였다. 위기가 클수록 더 넓은 테이블이 필요하다. 문명사적 전환의 파고가 몰려오는 이 시기에 사회적 대화 기구를 고용 행정의 하부기관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역사적 인식의 빈곤과 다름없다. ‘사회적 대화’는 ‘지역고용 활성화 법’이 감히 손댈 영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