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고 2학년 남학생 이영옥의 숙원은 개명이다. ‘영옥’이라는 여자 이름은 그에게 심한 콤플렉스다. 대체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남자아이 이름을 영옥으로 지었을까? 엄마 정순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출생신고 때 영옥이 떠올랐다. 그 이름이 참 좋다”며 개명을 반대한다. 엄마에게는 봄날,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공황증세가 나타나는 이상한 지병이 있다.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잃어버린 어릴 때 기억, 1949년 있었던 그때 그 일을 되살리려 과거를 추적한다.
지난주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내 이름은’이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 엄마를 지독히 괴롭히던 마음 병의 근원은 4·3 ‘민간인 학살’이란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제주 4·3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 넘게 이어진 좌우 간 무력 충돌,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도민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숨지자 이에 항의해 제주 전역에서 민관 합동 총파업이 일어났고, 미군정과 경찰은 좌익의 선동이라며 색출에 나섰다. 서북청년단까지 가세하며 억압이 극에 달하자 이듬해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대가 ‘탄압 중지’ ‘남한 만의 단독선거 반대’를 외치며 경찰서와 극우세력을 습격, 경찰 등 희생자를 내면서 사건은 확대일로로 치닫는다. 그해 8월 들어선 초대 이승만 정부는 11월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초토화작전을 명령한다. 4·3 소요를 일으킨 남로당 무장대는 약 350명에 불과했는데 전체 희생자는 3만 명이나 됐다. 좌익 척결을 빌미로 국가폭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이후 50년 넘게 금기어였던 제주 4·3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처음으로 유족과 제주도민에 공식 사과하는 등 정부 노력으로 뒤늦게나마 양지에서 추모가 가능해졌다. ‘내 이름은’은 1만 명의 시민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래서인지 영화 종반부 정순이 왜 그렇게 영옥이라는 이름을 좋아했는지 밝혀지는 대목이나 춤꾼인 그가 살풀이춤을 추는 장면에서 희생 당사자인 주인공뿐만 아니라 관객도 치유받는다. 참혹했던 한국 현대사를 기억하면서 관객은 방관자였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벗는다. 4월을 맞아 개봉한 이 영화는 물론 책으로도 4·3을 상기하기 좋은 때다. 마침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의 4·3 사건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난달 말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이선정 논설위원